“정부 못믿겠다” 먼지측정기 사고… 뿔난 엄마들 학교에 청정기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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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대응’ 직접 나서는 시민들

“정부가 해주는 게 뭔가요. 내 아이들 내가 지켜야죠.”

전남 나주시에 사는 주부 권모 씨(40)가 26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실 2곳에 공기청정기 설치가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공기청정기 구입 비용은 학부모들이 나눠 내기로 했다. 사실 권 씨는 개학 전부터 학교에 공기청정기 설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예산 탓에 불가능했다. 결국 같은 반 학부모들을 설득해 공기청정기를 직접 구입하기로 했다.

최악의 초미세먼지(PM2.5)가 한반도를 덮치자 권 씨처럼 많은 시민이 스스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정부로부터 뾰족한 해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화가 박종혁 씨(44)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주기적으로 집 안에서 먼지 농도를 측정한다. 박 씨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 박 씨는 “환경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미세먼지 농도 정보는 측정기 수도 제한적이고 측정주기도 1시간 이상으로 길어 정확성이 떨어진다. 자체 측정 후 농도가 높으면 공기청정기로 환기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측정기 가격은 저렴한 게 6만 원 정도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공간의 미세먼지 농도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회원 수 7만여 명 규모의 온라인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에는 지역별 미세먼지 농도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1800여 건이나 올라왔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에는 학부모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교육당국 관계자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달라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는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드는 장면을 시연하거나 체내 미세먼지 배출에 효과적인 음식을 소개하는 영상이 인기다. 미세먼지 대처법을 소개한 영상은 지난해 11월부터 50개 가까이 등록됐다. 가장 인기를 끈 영상은 조회 수가 7만 건에 육박한다.

아예 미세먼지를 피해 이사 가는 사람도 있다. 김은경 씨(38·여)는 올해 초 미세먼지를 피해 서울에서 전남 완도군으로 이사했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면 비염을 앓는 자녀가 “숨쉬기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완도는 미세먼지가 별로 없느냐”는 지인의 문의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고 한다.

정부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따라 공공기관 임직원 차량 2부제가 이날 수도권 공공기관에서 일제히 시행됐다. 올 들어 벌써 4번째다. 서울 시내 구청 등 일부 지자체는 주차장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서초구청을 찾은 장모 씨(40)는 “지난번 2부제 시행 때 모르고 차를 끌고 왔다가 다른 곳에 주차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번에는 발령된다는 걸 보고 미리 대중교통으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2부제 적용을 두고 마찰을 빚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국립중앙의료원 등 서울의 일부 공공의료기관은 방문객 민원에 못 이겨 2부제 적용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지운 easy@donga.com·황성호·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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