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맞붙은 한일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3월 3일 1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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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충남급, 日 모가미급과 치열한 경쟁… 방산 수출 노하우 일본 압도

한국 해군의 충남급 호위함 충남함.  [국방부 제공]
한국 해군의 충남급 호위함 충남함. [국방부 제공]
‘강성노조 천국’으로 불리는 호주는 군함 가격이 세계에서 손꼽히게 비싼 나라로 악명 높다. 그간 호주는 외국 기성 모델을 구입해 자국에서 건조하는 방식으로 군함을 조달해왔다. 기술도입 과정의 비용 상승분을 고려해도 호주 군함 가격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가령 1990년대 중반 도입된 호주 주력 호위함 ‘안작(Anzac)’급은 독일 ‘메코 200’ 설계를 들여온 모델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주요 무장과 센서를 생략한 채 도입했음에도 같은 모델을 구입한 다른 나라보다 1.5배 높은 비용을 치렀다.

호주 건함 실력 ‘결함 1만4000가지’


비슷한 시기 호주가 도입한 3000t급 재래식 잠수함 ‘콜린스(Collins)’급은 가격이 당시 미국 LA급 공격 원자력잠수함보다 비싼 8억 달러(약 1조680억 원)에 달했다. 스페인 상륙함 설계를 가져와 호주에서 건조한 ‘캔버라(Canberra)’급 강습상륙함은 오리지널의 2배인 12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쓰고도 1만4000가지 결함이 발견된 탓에 전력화가 지연됐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호주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 사업에 비하면 기존 군함들을 둘러싼 논란은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다.

호주 국방부는 2월 20일(현지 시간) 전력 강화 프로그램 ‘시(SEA) 5000’을 전면 재조정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인 ‘헌터(Hunter)’급 호위함 도입도 수량이 기존 9척에서 6척으로 축소됐다. 호주는 헌터급 3척 구매를 취소해 절감한 비용으로 다른 호위함 11척을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같은 ‘호위함(Frigate)’인데 3척 값을 줄여 어떻게 11척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초 호주 해군은 지금 운용하는 안작급(3600t급) 호위함 8척을 대체하고자 헌터급 도입을 추진했다. 헌터급은 영국 해군이 도입할 예정인 26형 호위함 설계를 가져와 호주 측 조건에 맞게 개조한 파생 모델이다. 일단 호위함으로 분류됐지만 배수량 1만t에 달하는 구축함 수준의 군함이다. 원형인 26형 호위함은 8000t급으로 척당 조달 가격이 13억 파운드(약 2조2000억 원) 정도다. 그런데 헌터급 1척 가격은 50억 호주달러(약 4조3500억 원)에 달한다. 심지어 이 값은 어디까지나 ‘목표 가격’이다. 최근 호주 정부가 발표한 헌터급 도입 총사업비는 9척 기준 650억 호주달러(약 56조6000억 원)다. 1척 가격이 72억 호주달러(약 6조2600억 원)로 치솟은 것이다.

가격이 폭등했다고 성능이 크게 향상된 것도 아니다. 헌터급의 덩치는 대형 구축함 수준이지만 전투력은 빈약하다. 수직발사관은 32셀(cell) 규모로, 단거리대공미사일 ESSM(사거리 50㎞), 소형 대함미사일 NSM(사거리 185㎞) 정도만 탑재할 수 있다. 헌터급과 덩치는 비슷하지만, 이지스 전투체계와 미사일 수직발사관 128셀로 중무장한 한국 세종대왕급 1척 가격은 1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호주 국영 방산업체 노조 도덕적 해이


호주 군함 가격이 폭등하는 주된 이유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노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호주 국가감사국(ANAO)은 국영 방산업체 호주잠수함공사(ASC)를 중심으로 강성노조의 이권 카르텔을 적발해왔다. 현지 언론이 보도한 ANAO 감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영 방산업체 노조는 자기네끼리 일감을 나누고 공기(工期)를 늘려 잡아 비용 폭등을 유발했다. 건함 사업마다 조 단위로 늘어난 추가 비용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권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용인됐다.

가령 현재 호주 해군이 운용하는 ‘호바트(Hobart)’급 방공구축함의 경우 일감을 ‘나눠 먹기’ 한 조선사들이 건조 과정에서 회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선체 규격이 제각각이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 만든 군함 블록을 전부 해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들 조선사와 노조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모든 추가 비용을 고스란히 호주 정부가 떠안았다. 이에 격앙된 데이비드 존스턴 당시 호주 국방장관이 연방 상원에 출석해 “나는 ASC가 카누를 만든다고 해도 못 믿겠다. 국내 조선업계의 비효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규 군함은 전부 해외에서 직구매할 것”이라고 일갈할 정도였다. 하지만 존스턴 장관은 노조의 거센 반발에 장관 자리에서 쫓겨났다.

노조 힘이 워낙 세다 보니 1척 가격이 항모 수준인 헌터급 사업은 언론과 정치권의 질타에도 계속 추진돼 현재 초도함이 건조 중이다. 보통 이 정도 군함을 건조할 때 기공 후 진수까지 길어야 2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지난해 첫 번째 선체 모듈이 완성된 헌터급은 2030년에나 진수될 예정이다. 2년이면 만들 군함을 8년간 붙잡고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일까. 일정이 늘어지면서 비용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ANAO를 비롯한 호주 정부 부처에서 사업 재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호주 정부는 감사기관과 정치권의 융단폭격에 사업 축소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호주 정부는 헌터급 도입 규모를 9척에서 6척으로 줄이는 대신 호바트급 개량형 방공구축함 3척, 신형 범용 호위함 11척, 유무인 전투함 6척을 건조해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호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함대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이 군사력 강화와 예산의 합리적 사용을 위한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호주가 도입하겠다는 11척의 신형 범용 호위함 후보에 한국 모델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호주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신형 범용 호위함은 해외 모델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조달될 예정이며 한국과 일본, 스페인, 독일 업체 모델이 후보라고 돼 있다. 국가별 후보 모델은 한국 대구급과 충남급, 일본 모가미급, 스페인 ‘알파 3000(ALFA 3000)’, 독일 ‘메코(MEKO) A-200’이다. 군함 11척을 구매하는 데 책정된 예산은 111억 호주달러(약 9조6600억 원)다.

4개국 호위함 모델이 후보로 올랐지만, 알파 3000과 메코 A-200은 조선사가 출혈 입찰을 하지 않는 이상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들러리’로 보인다. 호주 정부가 책정한 예산에 따라 호위함 1척 가격은 10억 호주달러(약 8700억 원)를 초과해선 안 된다. 알파 3000 조선사는 지난해 호주 정부에 척당 가격 6억 달러(약 8000억 원)를 제시했는데, 이는 스페인에서 건조해 납품하는 조건이다. 호주 현지 건조 조건으로는 최소 8억 달러(약 1조 원)가 제시됐다고 한다. 메코 A-200은 독일 건조 기준으로 1척 가격이 5억 유로(약 7230억 원)인데, 마찬가지로 호주에서 건조할 경우 호주 정부의 예산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우수한 성능 갖춘 韓 충남급과 日 모가미급
일본 해상자위대의 모가미급 호위함 쿠마노함.  [위키피디아]
일본 해상자위대의 모가미급 호위함 쿠마노함. [위키피디아]


반면 한국 충남급은 1척에 4000억 원, 일본 모가미급은 1척에 500억 엔(약 4400억 원) 수준이다. 해외 모델을 호주 현지에서 건조할 때 가격이 2배로 뛰는 전례를 고려하면 호주 국방부가 추산한 예산 범위를 충족하는 함종은 충남급과 모가미급뿐이다. 그렇다면 호주는 두 모델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충남급은 만재배수량 4300t급 호위함으로 한국 해군 해역함대의 주력 방공함이 될 최신형 모델이다. 한국산 ‘미니 이지스 레이더’인 다기능 4면 고정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갖췄고, 한국형 수직발사기 KVLS(16셀 규모)에 해궁 함대공미사일, 전술함대지미사일, 홍상어 대잠어뢰 등을 탑재할 수 있다. 가스터빈 엔진과 디젤 엔진을 모두 갖춘 데다, 하이브리드 추진 방식을 채택해 대잠수함 작전에서 정숙성이 높다.

모가미급은 만재배수량 5500t급 호위함에 해상자위대 2선급 전투함으로 설계된 신형 모델이다. ‘일본판 이지스 레이더’로 불리는 FCS-3A의 염가형 모델 OPY-2 AESA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Mk.41 수직발사기(16셀 규모)에 아스록 대잠미사일과 ESSM 함대공미사일을 탑재한다. 보조 전력으로 개발된 탓에 해상자위대의 다른 1선급 전투함보다 전체 성능이 떨어지지만, 덩치가 큰 만큼 확장성이 우수하다. 현재 탑재된 각종 센서 성능도 좋은 편이다.

만약 호주가 군함 확장성만 놓고 호위함을 선택한다면 일본이 근소하게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급은 거의 모든 센서와 무장을 국산화했다. 따라서 호주가 현재 사용하는 ESSM 등 미국산 무장을 탑재하려면 적잖은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 애초에 미국산 무장을 채택한 모가미급은 그런 작업이 필요 없고, 큰 선체 덕에 확장성이 높아 호주가 요구하는 무장을 장착하기 용이하다. 호주가 중시하는 대잠 센서의 성능만 놓고 보면 멀티-스태틱(multi-static) 기술을 도입한 모가미급이 충남급에 비해 유리한 점도 있다. 하지만 이번 호주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모가미급이 충남급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약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수출 실적’이다.

일본은 해외에 이렇다 할 무기를 수출해본 경험이 없는 나라다. 특히 수출 대상국 업체들과 협력해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생산 사업을 관리한 경험이 그야말로 전무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주가 군함을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현지 업체와 협업이다. 한국은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두 업체 모두 군함 수출은 물론, 해외 기술이전, 현지 생산 사업에서 일본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우수한 커리어를 갖췄다. 한국 조선업계의 수출형 전투함은 이미 필리핀(호세 리잘급)과 태국(푸미폰 아둔야뎃급)에 수출됐다. 한국산 전투함이 필리핀 차기 초계함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태국 차기 호위함 사업의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격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인도네시아를 잠수함 건조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돌발 변수 대비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 필요
호주잠수함공사(ASC) 조선소 모습. [위키피디아]
호주잠수함공사(ASC) 조선소 모습. [위키피디아]


호주는 이번 호위함 도입 사업에서 자국 조선업계와 협업할 건함 파트너를 찾고 있다. 군함 수출과 해외 기술협력에서 초심자인 일본, 이미 시장 강자로 군림하는 한국의 승부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돌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이미 호주에 건함 협력 인프라를 구축한 스페인이 파격적 조건으로 출혈 경쟁에 뛰어들거나, 일본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상 처음으로 벌어지는 방산 시장 ‘한일전’에서 승리하려면 국내 조선업계뿐 아니라 정부 유관기관들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9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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