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패배 보도 않고…당국 칭찬 일색 우크라TV 프로

  • 뉴시스
  • 입력 2024년 1월 4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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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방송국 공동 제작 텔레마라톤 연합뉴스
2022년 3월 시청률 40%에서 10% 미만 추락
전쟁 장기화 따른 국민 희생 필요성 안 알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뉴스 프로그램이 전쟁에 대해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만을 제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이래 전쟁 관련 뉴스를 전하는 TV 프로그램은 주요 TV방송국들이 공동 운영하는 텔레마라톤 연합뉴스뿐이다.

24시간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우크라이나 탱크 모습,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의료진, 해외를 순방하는 정치 지도자들 모습을 중계한다. 또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등장하는 당국자들을 칭찬하기 바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이 프로그램이 “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갈수록 이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 때 국민 통합의 대표적 수단이던 프로그램이 정부 선전 매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전쟁 상황을 장밋빛으로만 전한다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군의 패배 소식과 서방 지원 약화 등을 감춰 국민들이 장기 전쟁에 대비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텔레마라톤 연합뉴스의 시청률도 급감했다. 이를 두고 서방 전문가들은 전쟁 승리가 어려워지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승리한다. 모두 우릴 돕는다”는 소식에 우크라 주민 모두 신물

키이우의 대중정보연구소 옥사나 로마뉵 소장은 “‘승리하고 있으며 모두가 우리를 지원한다’는 묘사에 모두가 신물을 내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령에 의해 6개 방송국이 참여해 제작되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비는 정부가 부담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비판적 채널들은 배제됐다. 지난해 7월까지 올렉산드르 드카첸코 우크라이나 문화 및 정보 장관이 뉴스 프로그램 제작회의에 참석했다.

전쟁 발발 직후 텔레마라톤 프로그램 시청률은 60%에 달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들 다수가 지지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접근해오던 때 텔레마라톤은 전황을 전하면서 주민들에게 대피하도록 안내했다.

또 필요할 때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열정에 찬 연설도 이 채널을 통해 방송된다.

이 프로그램은 전황을 전하고 각급 사령관을 인터뷰하고 당국자들이 토론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2022년 3월 시청률이 40%에 달하던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2022년 말에 14%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10% 미만이다.

시청자들은 러시아 점령 위협이 줄어들었음에도 이 프로그램이 갈수록 위협을 갈수록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키이우에서 만난 보흐단 추프리나(20)은 “모든 게 잘 진행된다는 소식뿐이다. 승리가 눈앞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추프리나는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 대반격에 대한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곧 러시아군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대반격은 실패로 끝났다.

텔레마라톤 모니터 전문가인 이호르 쿨리아스는 지난해 내내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우크라이나군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고 러시아군은 “패닉 상태에 빠져 큰 피해를 보고 있고 대거 투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면서 실제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진행자 중 한 명인 올레나 프롤략은 전선 상황에 대해 정부가 알려주는 것만 방송한다고 밝혔다. “공식 입장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신뢰도는 2022년 3월 69%에서 지난달 43%로 떨어졌다. 또 우크라이나 주민의 3분의 2 이상이 프로그램 폐지를 원한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기보다 해악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의회 표현의 자유 위원장 야로스라우 유르치쉰은 이번 달 “낙관적 전망만을 제시한 끝에 실망이 커진 것”이라면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유르취쉰 위원장 등 전문가들은 프로그램이 전쟁 장기화에 따라 국민들이 더 희생할 필요가 있음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는 후방 지역 주민들이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면서 병력 징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여전히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쿨리아스의 분석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속한 국민의 일꾼 당 소속 정치인들이 지난해 전체 출연 정치인의 68%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방송국 스타 미디어의 올렉산드르 보구츠키 대표는 “텔레마라톤 만으로는 여론을 알 수 없다”면서 텔레그램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고 강조했다.

로마뉵 대중정보연구소장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텔레마라톤이 러시아 선전 흉내 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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