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아베, 日 우익 구심점이자 최장수 총리…퇴임 후에도 자민당 실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8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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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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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피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68)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우익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를 지냈다. 집권 내내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한 그는 퇴임 후에도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 ‘아베파’의 수장이자 막후 실력자로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하며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임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岸田文雄)의 선출에 깊이 관여했다.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 방위비 증액 등 현재 자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주요 강경보수 정책 역시 그가 재직 시절부터 추진했던 사안이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전 총리는 1954년 도쿄에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 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 남부 야마구치현 지역구 관리로 바빴던 부친 대신 자신을 돌봐준 외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늘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외조부를 꼽고 “나는 아베의 아들이지만 기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도 했다.

동생 기시 노부오(岸信夫·63) 방위상 역시 출생 직후 아들이 없는 외삼촌의 양자로 보내져 성을 바꿨을 만큼 기시 전 총리는 형제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역시 원래 기시 전 총리의 지역구였다. 그가 사위에게 넘겨준 후 외손자인 아베 전 총리에게 다시 넘어왔다. 야마구치는 일본이 조선을 공격해 차지해야 한다는 ‘정한론’ 등을 주창한 19세기 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을 배출한 곳이다. 아베 전 총리 또한 그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평을 듣는다.

아베 전 전 총리는 1993년 처음 중의원(하원)에 뽑혔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지냈다. 당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여세를 몰아 52세인 2006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참의원 선거 참패, 고질병인 위궤양 등으로 1년 만에 사퇴했지만 2012년 12월 다시 총리에 올랐다. 재취임 1년 후인 2013년 현직 총리 신분으로 외조부 등 A급 전범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 등 주변국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평화헌법 개정 추진했지만 무산

그는 재집권 기간 엔화 약세, 금융 완화 및 재정지출 확대 등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 ‘아베노믹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 경제는 엔화 약세에 힘입어 한때 호조를 보였고 그의 지지율도 76%까지 치솟았다. 2차 집권 동안 치러진 6번의 선거에서도 모두 압승했다. 다만 무작정 돈 풀기에만 급급해 국가채무 비율이 급증했고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탈출에도 실패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일본의 군대 보유 및 교전을 금지한 헌법 9조(평화헌법)의 개헌을 시도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위협에 맞서려면 군사대국화가 필요하다며 ‘필생의 과업’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7년 지인이 운영하는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등 두 사학에 특혜를 줬다는 ‘사학 스캔들’, 2019년 세금이 들어가는 벚꽃 관람 정부 행사에 지역구 주요 인사를 초청했다는 비판을 받은 ‘벚꽃모임 스캔들’이 발생해 위기를 맞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고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까지 1년 연기되면서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결국 2020년 9월 물러났다. 두 차례 집권 동안 총 3188일(약 8년 8개월) 재직했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의 주선으로 1987년 결혼한 부인 아키에(昭惠·60) 여사와의 사이에 자녀는 없다. 아키에 여사는 한국 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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