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소련 부활 노리는 푸틴 “우크라는 美식민지” 軍투입 합리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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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진입 명령’ 속내는
푸틴 “러 역사의 핵심이자 옛 영토… 소련 붕괴뒤 빼앗겨, 보복 권리”
WSJ “냉전시대 영향력 회복 목표”… CNN “우크라 인정않는 광기의 연설”
美전문가 “美 맞먹는 초강대국 원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 친러 세력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모스크바=신화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 친러 세력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모스크바=신화 뉴시스
“우크라이나는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진입을 명령하기 직전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존재 자체를 대놓고 부정했다. ‘꼭두각시’ ‘식민지’ 등의 용어로 우크라이나를 비하했고 “러시아의 옛 영토”라며 군대 진입을 정당화했다.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뺏겼으며 미국이 반(反)러시아 정책을 펴고 있어 안보 차원에서 서방과 맞서고 있다고도 했다. 소련 붕괴 후 쇠락해진 러시아의 위상을 되돌리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넘보는 그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우크라, 국가 아냐”
푸틴 대통령은 1시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전통을 가진 적이 없고 오늘날에도 외부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다”며 깎아내렸다. 이어 “현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의해, 정확히는 볼셰비키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우크라이나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깡그리 무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하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설사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반러 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나토 또한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 또한 보복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며 군대 투입의 명분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토가 지금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지만 두렵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또 다른 제재의 구실을 발견해서 조작할 것”이라고 했다.
서방 “냉전 꿈꾸는 푸틴, 광기의 연설”

푸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밝혀 왔다. 소련 시절 정보요원으로 일했던 자신이 한때 택시 운전사로 전락했다는 과거까지 공개하며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주창했다. 서구 언론은 이날 연설 또한 이런 인식하에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소련 붕괴 후 30년간 미국과 유럽에 쌓인 불만 목록을 모두 선보였다며 “동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냉전시대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뒤뜰’ 정도로 폄훼하는 그의 인식이 노골적으로 투영됐다는 것이다. 메리 서로티 미 존스홉킨스대 역사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과 맞먹는 초강대국으로 복귀하길 원한다”고 평했다. CNN은 ‘광기(madness)’의 연설이라며 “우크라이나를 독립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서방 정치인은 푸틴 대통령이 유럽 국경을 다시 그리려는 시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고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련 붕괴 당시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였던 로더릭 브레이스웨이트는 WSJ에 “푸틴 대통령이 집권 말기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유사하다”며 그가 당시 정치적 감각을 상실한 대처 전 총리처럼 ‘멈춰야 할 시점’을 놓쳤다고 혹평했다.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와 달리 국제사회의 반발이 워낙 심해 푸틴 대통령의 의도가 실현되지 못할 것이란 의미다. 숀 워커 가디언 기자 또한 트위터에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내 친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회의를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연출했다고 꼬집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돈바스#푸틴#우크라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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