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토 ‘조선인 코무덤’에 울려 퍼진 ‘아리랑’…첫 일본인 주도 위령제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3일 2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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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23일 오후 2시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의 한 봉분. 하나즈카(鼻塚), 즉 이른바 코무덤(귀무덤)으로 불리는 이 곳 앞에 머리 희끗한 일본인 3명이 섰다. 가사가 적인 꼬깃꼬깃한 종이를 든 이들은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아리랑’을 불렀다. 구슬픈 아리랑 가락에 눈시울을 붉히는 참석자도 있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의 명령으로 왜군들이 조선인의 코와 귀를 자른 뒤 일본으로 가져와 만든 봉분이다. 이날 이곳에서 일본인 50여 명은 잔혹한 과거사를 반성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하자며 자발적으로 모여 위령제를 열었다. 앞서 2007년부터 한국단체인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위령제를 열어왔는데 일본인들이 주도해 위령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행사는 교토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오구라 마사에(小椋正惠·76) 씨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다도가 윤도심 씨(63)로부터 코무덤의 아픈 역사를 접하게 된 그는 ‘교토에서 세계로 평화를 퍼뜨리는 모임’을 만들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 오구라 씨는 추도사에서 “교토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왔다”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를 한다면 그 의미가 널리 퍼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구라 씨와 이번 행사를 준비한 사람 중에는 최근 코무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한다는 취지의 책을 출간한 아마키 나오토(天木直人·73) 전 주레바논 일본 대사도 있다. 그는 행사 후 기자와 만나 “지금의 한일 관계 악화도 결국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한일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케이팝 등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젊은층에게까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위령제 후 꽃을 들고 헌화를 하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교토 시민인 이마이 나오코 씨(62)는 “잘 모르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면서 한일 간 우호 관계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오사카 한국문화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들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운 의병의 후손인 이영하 씨도 한복을 입고 참석해 박수를 받았다.

교토=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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