駐이스라엘 美대사관 이전 1년, 한 걸음 더 멀어진 평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3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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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4일 ‘분노의 날’로 지정 반발
미국 6월 중 이-팔 분쟁 관련 평화안 발표 가능성
팔레스타인의 희망은 독립국가 인정

미국이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지 14일로 꼭 1년이 됐다. “(미국은) 지옥문을 열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팔레스타인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 결정으로 1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평화에서 한걸음 더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중동 평화안’ 발표를 준비 중이지만 그간 노골적인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탓에 “‘중재자’로서 자격을 잃었다”는 평가가 적잖다.

13일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주도 아래 마련 중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안’은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 기간이 끝나는 6월 중순경 발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현재 평화안 내용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 트럼프 행정부도 “이스라엘에게 안보를, 팔레스타인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청사진이 될 것”이라는 추상적 설명 외에 내놓은 것은 없는 상태다.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미리 ‘반대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2017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 발언을 시작으로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원하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자금 지원 중단 △워싱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소 폐쇄 위협 등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비춰볼 때 팔레스타인 희망에 훨씬 못 미치는 결정이 담겨있을 것이 명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는 이달 초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준비 중인 평화안은 팔레스타인을 항복하게 하려는 조건”이라며 “팔레스타인이 결국 고개를 숙일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정말 모르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은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슈너와 함께 중동 평화 계획을 구상하는 제이슨 그린블랫 백악관 국제협상 특별대표는 11일 미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측이 평화안 내용을 알기도 전에 거부하고 있다며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수니파, 시아파로 대표되는 중동지역 이슬람 종파 분쟁만큼이나 뿌리 깊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계기로 국제 사회 대부분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2국가 해법’이 평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선택지로 여겨졌으나 트럼프 행정부 들어 상황이 급반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대사관 이전 결정으로 동예루살렘을 미래 수도로 생각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희망은 꺾었고, 현재 호주와 과테말라, 브라질 등도 미국을 따라 대사관 이전을 결정하는 등 이같은 움직임은 확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보수 강경 노선을 고수해온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재집권에 성공한 것도 팔레스타인에게는 악재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선 직전 이스라엘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재집권에 성공하면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서안지구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점령했으며 정착촌이 건설돼 이스라엘 주민 4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서안을 합병할 경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지난달 유럽 전직 외교장관 및 총리 등 30여 명은 유럽연합(EU)에 서한을 보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해법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 측에 공정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계획에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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