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주도 ‘목숨을 위한 행진’… 베트남 反戰 이후 최대 인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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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전역서 총기규제 강화 시위]2월 17명 목숨 앗아간 더글러스고교 생존 학생들 앞장
총기 난사 진행 6분20초에 맞춘 곤잘러스 ‘눈물의 연설’ 심금울려
휴양지 간 트럼프, 워싱턴 비워… 백악관 “용감한 청년들에 박수”

총기 난사에 친구들을 잃은 미국 10대들의 분노가 1970년대 베트남 반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인파를 거리에 불러 모았다.

24일(현지 시간) 10대들이 주도한 ‘총기 규제 강화 시위’가 미 전역 800여 도시에서 열렸으며, 특히 수도 워싱턴에 주최 측 추산으로 80만 명이 운집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USA투데이 등이 보도했다. 영국 스페인 스위스 프랑스 등 해외 각국에서도 이날 동조 시위가 열렸다.

‘우리의 목숨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날 시위는 지난달 14일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더글러스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 학생들이 주도했다. 10대들의 호소에 미 국민들이 화답했다. 워싱턴에서만 주최 측 추산으로 80만 명이 쏟아져 나와 의회의사당과 2.5km가량 떨어진 백악관까지 도로를 가득 메웠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들도 동참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USA투데이는 “역사상 하루 기준 수도에서 일어난 집회로는 최대 규모”라며 “지난해 50만 명이 모였던 ‘위민스 마치(여성 행진)’보다도 큰 규모”라고 분석했다. AP통신도 이번 행진이 1960, 70년대 베트남 반전 시위 이후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청년 시위라고 전했다.

의회의사당 인근에 만들어진 연단에는 20여 명의 청소년이 연이어 올라 총기 규제에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지난달 참사 직후 “전미총기협회로부터 돈을 받는 정치인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규탄해 주목받았던 더글러스고교의 생존 학생 에마 곤잘러스의 ‘눈물의 연설’은 세계의 심금을 울렸다.

“6분 20초. 그 시간에 내 친구 17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더글러스 공동체 모두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곤잘러스는 참사로 숨진 친구들의 이름과 이들이 잃어버린 작은 일상과 기회를 하나씩 언급한 뒤 총기 난사가 진행된 시간인 6분 20초가 될 때까지 약 4분간 침묵하며 연단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그 시간 동안 공포 속에서 쓰러져 갔을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슬픔과 분노를 공유했다.

올해 9세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손녀 욜란다 르네 킹도 연단에 올랐다. 1968년 암살자의 총격에 쓰러진 킹 목사의 서거 50주기를 2주가량 앞둔 이날 욜란다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할아버지의 연설을 빌려 “나에게는 총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해 대중의 박수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에 “미셸과 나는 오늘 행진이 있게 한 젊은이들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 계속해라. 여러분은 우리를 앞으로 이끌고 있으며, 변화를 외치는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응원의 글을 남겼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도 잇달아 응원 글을 올렸으나, 공화당 인사들은 말을 아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 휴양지인 마러라고 리조트로 향해 워싱턴에 있지 않았다.

백악관은 24일 성명을 통해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보장)를 행사하는 용감한 젊은 미국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대통령은 범죄경력조회시스템(NICS) 강화 법안과 학교폭력방지법의 의회 통과를 촉구해 왔다”고 발표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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