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암살범, 범행 두달전 KGB 접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54년만에 기밀문서 2891건 공개

1963년 9월 28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총격범인 리 하비 오즈월드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소련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오즈월드는 ‘어설픈 러시아어’로 “방금 당신네 대사관에서 (발레리 블라디미로비치 코스티코프) 영사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소련대사관 관계자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흘 뒤인 10월 1일 오즈월드는 소련대사관에 다시 전화해 “지난 토요일(28일) 영사와 이야기했는데 워싱턴으로 전보를 보내준다고 했다.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오즈월드가 케네디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두 달 전 일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6일(현지 시간) 공개한 중앙정보국(CIA)의 케네디 암살 관련 도청 메모를 통해 드러났다. 오즈월드가 그해 11월 22일 케네디 암살 두 달 전 사회주의 국가였던 옛 소련 및 쿠바 측과 접촉한 정황이 54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코스티코프 영사는 암살 업무를 담당한 국가보안위원회(KGB) 13부서가 지원한 작전에서 활동한 적 있는 “확인된 KGB 요원”이라고 메모는 밝혔다.

이후 미 정보 당국은 케네디 암살 전인 8월부터 10월까지 오즈월드의 동선을 수집하고 있었다. 연방수사국(FBI) 뉴올리언스 지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오즈월드가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뒤 그의 흔적을 놓쳤고 FBI는 오즈월드를 수색하고 있는 댈러스 지국에도 이 보고서를 보냈다고 썼다.

CNN은 “(메모를 통해) 미 정보 당국이 오즈월드가 소련 KGB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한 정황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10대 시절부터 공산주의에 심취했고 한때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전향한 미 해병대 출신 오즈월드의 배후에 소련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키우는 증거라는 점에서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54년 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아직 러시아 개입설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메모 작성자는 케네디 암살 다음 날인 23일 FBI 연락 담당자에게서 “오즈월드가 미국 여권이나 비자 문제로 소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소련대사관과 통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적었다. 에드거 후버 당시 FBI 국장이 남긴 다른 메모에서도 오즈월드가 소련대사관에 비자와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공개된 정부 기밀 문건 2891건에 따르면 FBI가 오즈월드 사망 하루 전 누군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사실도 확인됐다. 오즈월드는 케네디를 암살한 지 이틀 후인 24일 댈러스 경찰서에서 유치장으로 향하던 중 나이트클럽 운영자인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현장에 수많은 경찰과 기자들이 있는 상황이었다.

후버 국장이 남긴 문건에서 그는 “전날(23일) 밤 댈러스 지국에 오즈월드를 죽이기 위해 조직된 무리의 일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 이에 후버 국장은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즈월드를 충분히 보호하라고 당부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적었다.

또한 케네디 암살 직전에 영국 신문사에 ‘기이한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케네디 사망 25분 전 영국의 케임브리지 이브닝 뉴스에 익명의 인물이 전화해 “큰 뉴스가 있을 것이니 런던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전화하라”고 말하고 끊은 것이다. 전화를 받았던 기자는 케네디 암살 소식을 접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전날 “오랫동안 기대했던 (케네디 대통령 암살) 파일들이 내일 공개될 것이다. 매우 흥미롭다”고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3000건이 넘는 문서 가운데 수백 건을 공개하지 않아 ‘반쪽 공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정부 기밀 문건 2891건 중 53건만이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문건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이날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문서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후까지 정보기관과 논쟁을 거친 결과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일부 기밀 문건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문서가 공개된 후인 27일 트위터에 “모든 것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게 나의 소망”이라고 적은 만큼 앞으로 기밀 문건이 모두 공개될 여지도 있다. 이날 공개되지 않은 수백 건의 문건에 대해선 180일간 공개 승인 여부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존 f 케네디#케네디 암살#케네디 암살 기밀문서#kgb#국가보안위원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