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드리머에겐 잘못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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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 드리머 추방 공식선언
전직대통령, 현직 정면비난 이례적
美 법무부, 6개월간 추방 유예… 내년 3월 5일이후 연장 불가능
“美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길뿐”

미국 동부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중반 한인 A 씨는 부모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 미국에 온 ‘드리머(Dreamer·미국 체류가 허용된 불법체류자 자녀)’다. 불법체류자인 부모와 형제들은 최근 영주권을 취득했지만 그는 21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영주권 취득 특례 대상에서 제외됐다. A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자리도 얻었다.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도입한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다카)’ 덕분이었다. 2년에 한 번씩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을 빼고는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A 씨는 내년 3월 이후 미국을 떠나거나 일자리를 잃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5일 “다카는 위헌”이라며 폐지를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두겠다고 밝혔지만 의회가 이 기간 안에 다카를 입법화하지 못한다면 80만 명의 미국 내 드리머는 추방될 위기에 놓인다.

다카 폐지로 미국 내 1만5000명의 한인 ‘드리머’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됐다. 이날 미국 한인 이민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는 다카 적용을 받는 한인 청년들과 부모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에 따라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3월 5일 이후에는 다카에 따른 노동허가의 갱신이 불가능하다. 유예 기간에도 신규 신청은 받지 않고 연장만 해준다. 연장 신청도 10월 15일까지 해야 한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활동하는 박제진 변호사는 “다카 폐지로 추방을 피하려면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구제 방법이 없다”며 “대상자들이 유예기간 안에 미국 의회가 입법을 해주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다카 폐지 결정에 대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집단 반발하는 등 비판 여론도 들끓고 있다. 다카에 서명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성명에서 “(드리머) 젊은이들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타깃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백악관이 이 젊은이들에 대한 책임을 의회에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멸적(self-defeating)’ ‘잔인한(cruel)’ 등의 수식어를 동원해 트럼프 행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정치에서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드리머들은 서류만 빼면 생각이나 마음이 모두 미국인”이라며 “대통령으로 재임 중 의회에 그들이 합법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법안을 요구했지만, 그런 법안은 나오지 않았다”며 의회의 책임도 물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오바마#트럼프#드리머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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