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골포스트 옮기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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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새로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적으로 판을 키우며 강하게 대응했다. 6일 새벽 미국 워싱턴에서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사무차관의 항의를 신호탄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 통화한 뒤 현직 대사의 일시 귀국 등 4개항의 ‘대항 조치’가 발표됐다. 주한 일본대사의 귀국 조치는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래 4년 5개월 만이다.

 애초 2015년 12월 28일 군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에서도 보수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한일관계에 정통한 한 언론인은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에 반기를 들었다”고까지 표현했다. 그나마 아베의 지지율이 높기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후로도 소녀상 문제 해결을 재촉하는 압력은 거셌지만 아베 정권은 “한국에 시간을 주자”며 인내했다. 그런데 서울의 소녀상이 해결되기는커녕 부산에 새로운 소녀상이 설치됐다.

 일본이 미국 등 국제 여론에 호소한다는 점이 우리에겐 아픈 대목이다. TV아사히는 “한국 내 소녀상은 40여 군데에 있지만 일본이 문제 삼는 것은 공관 앞 소녀상뿐”이라며 “‘빈 협약’ 위반”을 지적했다.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 제22조는 ‘상대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지킬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다시 험악해지는 한일관계를 우려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견제와 북핵 대응을 위해 원활한 한일관계를 원하고 있다. 재작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배경에 미국의 압력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고자질 외교’라 비판하는 외교활동을 벌인 시절도 있었다. 당시 일본이 자주 썼던 표현이 “한국은 골포스트(골대)를 옮긴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요구하고, 하나를 합의하면 다른 것을 들고나와 갈등이 끝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역사 문제에 거듭 집착하는 한국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 피로증(Korea Fatigue)’이란 말도 돌았다. 요미우리신문은 6일 사설에서 “일본과의 역사 문제를 명분으로 하면 국내법, 국제법이나 타국과의 합의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한국의 독선적 체질”을 지적하며 “이는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저하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본 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10억 엔(약 103억 원) 송금까지 모두 마친 일본은 “한국만 창피할 뿐”이라며 국제 여론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하지만 일본도 이미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소녀상에 손댈 수 있다고 기대할 정도로 현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결국 최종 목표는 다음 정권에 대한 견제다. 한국에서는 유력 후보들이 국민 여론을 업고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운운하고 있다. 그들이 국민감정을 부추겨서 혹 정권을 잡는다손 쳐도, 그 사이 한국의 국제 신인도는 추락할 것이다. “한국은 협상을 해 봤자 만날 바꾼다. 못 믿을 나라다.” 이보다 아픈 지적은 없다.

 한국 미국 일본은 함께할 일이 많다. 중국의 팽창주의, 북핵 미사일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공조가 불가피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하는 방위비 분담 요구 등에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처해야 할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는 가장 큰 국익이고,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도 않는다. 또다시 “거 봐라. 역시 골대를 옮기고 있지 않은가”라는 조롱이 벌써부터 귓전을 맴돈다. 일본의 처사는 얄밉지만,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국익이 될 수 없다는 점도 한 번쯤 생각해볼 때다. 그리고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인도 필요하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골포스트#군위안부 합의#고자질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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