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스프리 딜레마’… 日정부 “수용”… 오키나와 주민 반발무마 ‘발등의 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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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미군, 수직이착륙기 추락 6일만에 비행재개 통보

 주일미군이 13일 오키나와(沖繩) 해상에서 불시착 사고를 냈던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의 비행 중단 결정을 19일 오후에 전면 해제했다. 오스프리는 사고가 잦아 ‘과부 제조기’로도 불리는 기종으로 사고 발생 6일 만에 비행을 재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예전 같으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일본 여론의 눈치를 본 뒤에야 비행 재개를 결정했겠지만 이번엔 신속했다. 주일미군이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해 태도를 바꾼 게 아니냐는 얘기가 일본에서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스프리 불시착 사고가 일어나자 곧바로 ‘중대한 사고’로 규정하고 주일미군에 안전대책 확보를 요구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통해 오스프리 비행 중단을 요구했고 미군 측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주일미군은 사고기 수습이 겨우 끝난 16일 밤 일본 정부에 “공중 급유 훈련 중 급유호스가 끊어져 생긴 사고”라며 “기체 이상이 아니므로 비행을 재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주일미군 측의 강경한 태도에 일본 정부는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리가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밤 TV뉴스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불시착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을 강조했던 일본이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미국 측은 좀처럼 (오스프리)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일본에서만은 일시적으로 멈추도록 했다”고 말했다.

 비행 재개 방침이 통보된 16일 밤 일본 방위성은 긴박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 주재로 17일 새벽까지 비밀회의가 이어졌다. 기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재실등도 끈 상태로 비행 재개 상황을 언제 발표할 것인지 조정했다.

 일본 정부 측으로선 19일을 제외하곤 촌각을 다투는 현안이 쌓여 있었다. 20일에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미군 후텐마(普天間)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정부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고, 22일에는 미군 비행장의 일부 반환식이 열린다. 또 26, 27일은 아베 총리의 하와이 진주만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한 방위성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비행 재개가 난항을 보이면 ‘(미국이) 오키나와에서 나가겠다’고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털어놨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일미군 철수를 거론했던 것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다.

 이나다 방위상은 19일 미군 측의 비행 재개 방침에 대해 “합리성이 인정된다. 공중 급유 이외의 비행 재개는 이해된다”며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고 이후 오스프리 전면 철수를 촉구해온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가 식민지냐”고 반발하고 있다.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현 지사는 “언어도단”이라며 “더 이상 (정부를) 상대하지 못하겠다”고 강한 불신감을 토로했다. 아사히신문은 20일 사설에서 ‘일본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미군 말대로 움직이는가’라며 ‘너무 빠른 비행 재개로 미군 및 일본 정부와 현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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