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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바람과 촛불

입력 2016-12-07 03:00업데이트 2016-12-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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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를 상징하는 회전문. 시카고 시청의 출입문이다.
조성하 전문기자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 주에 있는 시카고는 ‘건축도시’로 불린다. 거길 여행하던 중 그 이유를 알게 됐다. 1885년 윌리엄 러배런이 세운 세계 최초의 고층건물 ‘홈 인슈어런스’(보험회사·높이 42m)와 그걸 통해 입증한 신개념의 건축공법 덕분이었다. 고층 건물을 지칭하는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란 단어도 그런 시카고에서 나왔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이란 뜻의 마천루(摩天樓)는 ‘스카이스크레이퍼’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당시 시카고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도시였다. 1870년 30만 명이 되지 않던 인구가 30년 만에 170만 명이 될 정도로. 대륙횡단철도 개통(1848년)으로 대륙육운(陸運)의 요충지가 됐고, 대서양∼오대호를 잇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내륙수운(水運)까지 떠맡았다. 중서부 곡창지대의 곡물 선물(先物)시장까지 들어서며 북미 대륙 금융의 한 축까지 담당했다. 그런 환경이야말로 미연방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 이듬해(1893년)에 기획한 엑스포(World's Columbian Exposition)를 뉴욕 시를 제치고 시카고가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엑스포에는 조선도 참석했는데, 고종이 파견한 윤치호 등이 조선관을 설치해 운영했다. 시카고는 금융 면에서는 뉴욕 다음이고, 인구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세 번째 도시다. 

 홈 인슈어런스 빌딩 건축은 19세기 후반 시카고에 불어닥친 건축 붐의 결과였다. 그 건축 붐은 1871년 대화재에서 비롯됐다. 1만7000채를 앗아간 화마에 10만 명이 살 집을 잃었다. 빈 땅도 많이 생겼다. 그러자 금융회사가 경쟁적으로 사옥 신축에 나섰다. 당시는 백가쟁명의 인재와 아이디어가 넘쳐나던 세기말의 산업혁명 완숙기. 유럽의 건축가들은 건축주와 빈 땅이 기다리는 시카고로 달려갔다. 선구적 아이디어가 가득 찬 설계도를 들고서. 그렇게 시카고는 건축실험의 현장이 됐다. 

 시카고 고층 건축의 핵심은 ‘철골(鐵骨)’ 구조였다. 그 아이디어는 미시간 호반의 무른 지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땅에 쇠기둥을 깊이 박아 기초를 튼튼히 했다. 그러자 얼마든지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시카고의 건축 붐은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비내력(非耐力)의 ‘시카고 벽(Chicago Wall)’과 ‘시카고 창문(Chicago Window·건물 벽의 통 유리창)’도 그중 하나다.

 시카고에서 특허를 신청한 ‘회전문(回轉門·Revolving door)’도 그렇다. 시카고의 특별한 자연 환경, 즉 강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시카고는 한겨울이면 시도 때도 없이 강풍이 불어댄다. ‘윈디시티(Windy City)’란 애칭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강풍을 막기 위해 평상시에는 닫혀 있되, 언제든지 쉽게 열 수 있는 문은 없을까. 그런 고민의 결과가 회전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을 처음 설치한 곳은 시카고가 아니라 뉴욕이었다. 도심 타임스스퀘어 앞의 ‘렉터스(Rector's)’라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1899년의 일이다. 뉴욕 상류사회 인사들이 주로 찾던 이곳은 실내를 뉴욕 최고급 호텔처럼 꾸미고 바닷가재 요리를 내놓았다. 관광객도 많이 찾던 명소였다. 그런데 회전문을 들인 이유가 시카고에서 개발한 목적과는 정반대였다. 회전문이 돌면서 바깥 공기는 실내로 들이고 실내 공기는 밖으로 배출하는 순환 기능을 높이 산 것이다.

 이렇듯 현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은 보는 시각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나는 그런 현상을 3일 제6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목격했다. 10월 29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 등장한 횃불을 통해서다. 횃불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뜨거웠고, 함성은 더욱 우렁찼다. 동아일보는 그걸 ‘횃불이 된 촛불’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주최 측이 전국에서 232만 명이 모였다고 밝힌 그날의 촛불을 횃불로 승화시킨 건 국민이었다.

 누군가는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란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선 달랐다. 그 광경을 공중에서 멀리 잡은 TV 화면엔 어떤 촛불도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촛불이 모여 만든 이글거림만이 있다. 그런 불구덩이에 바람이 분다면…. 없던 불도 일어나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날 밤의 횃불처럼.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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