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동문’에 SOS 보낸 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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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71)는 2005년 6월 19일 60세 생일을 군부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맞았다. 수차례 군부에 탄압중지를 촉구했던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78·1997∼2006년 재임)은 “수지 여사가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에서 생일을 맞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수지 여사는 미얀마 최고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인 자국의 민족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 다시 아난 전 총장의 도움을 받게 됐다.

미얀마 정부는 세계적으로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로힝야족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자문단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아난 전 총장은 9명의 자문단 가운데 외국인 위원 3명 중 한 명으로 참여하지만 사실상 관련 논의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BBC는 전했다.

이로써 노벨 평화상 ‘선배’ 수상자가 ‘후배’ 수상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새가 됐다. 수지 여사는 1991년, 아난 전 총장은 2001년 유엔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로힝야족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미얀마 정부가 외국 전문가에게 자문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100만 명 내외로 추산되는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은 불교 신자가 90%인 미얀마(인구 약 5500만 명)에서 기본적인 이동권도 박탈당한 채 폭력과 수탈에 시달리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발급해 주지 않고 인도 벵골 지역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는 뜻의 ‘벵갈리’로 부른다.

이런 차별의 배경에는 영국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온 로힝야족이 영국인을 도와 식민 지배를 공고화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 미얀마의 진보적 정치인들도 로힝야족 차별을 당연하게 여긴다. 인권운동가 출신인 수지 여사마저 5월 “‘로힝야’라는 표현 자체를 쓰지 말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했다.

수지 여사가 자문단을 꾸린 건 사태 해결의 전환점이 될뿐더러 굵직한 외교 행사를 앞두고 사전에 묘수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31일부터 5일간 열리는 정부와 반군 간 평화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얀마를 찾는다. 수지 여사는 다음 달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나고 유엔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BBC는 “이들 행사에서 수지 여사는 로힝야족 문제와 관련해 곤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자문단을 구성해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자문단 구성이 임시적인 모면책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로힝야족 인권에 대해 언급조차 하기 힘든 미얀마에서 자문단 구성은 문제의 심각성을 정부가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내년 하반기에 나올 권고안에는 로힝야족의 인권신장 방안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개선안은 미얀마 내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수지 여사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권고안 내용도 중요하지만 미얀마 정부가 이를 얼마나 수용하고 이행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전문 매체인 유엔디스패치는 “수지 여사가 아난 전 총장이라는 거물급을 자문단에 포함시킨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향후 나올 권고안을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 로힝야(Rohingya)족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 집단 거주하는 수니파 무슬림 소수민족. 인구의 70%가 버마족인 미얀마는 140개 소수민족을 포용했지만 로힝야족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 체류자로 대하고 있다. 산아 제한, 이동 자유 박탈 등 각종 차별과 핍박에 시달린 로힝야족은 ‘보트피플’(선상 난민)로 국제 문제가 됐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영국이 식민 통치를 위해 인도에서 들여온 노동 인력의 후예로 보지만 로힝야 학자들은 7세기 라카인 주에 정착한 아랍 무슬림 상인의 후예라고 규정하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노벨평화상#아웅산수지#코피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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