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서 주도권 가지려면…남북협력 주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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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美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그제(18일) 저녁, 마침 한국에 온 동아시아 외교전략 담당 미 정부 고위관계자와 지인들이 모여 자정 무렵까지 대화를 나눴다. 신 밀월 관계로 접어든 미일동맹으로 한국이 왕따가 되가는 것 아니냐 하자 미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일 관계 강화는 한국 입장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미일 양자간에 뜻이 맞아 이루어지는 일이며 이는 한국에게도 좋은 일이다.”

우리는 늘 우리 입장에서 한미 한일관계를 보지만 미국은 미일 관계를 주축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는 국제정치의 냉엄함을 확인시켜준 말이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의 말이다. “오바마 정부 대북 정책은 미묘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전에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지금은 미일동맹을 기본 틀로 남북관계는 남북이 알아서 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주류이다.”

이 말은 사실 말이 좋아 ‘남북이 알아서 풀라는 것’이지 남북문제는 워싱턴의 관심 사항에서 다소 멀어졌음을 확인해준 말이다. 실제로 워싱턴에서 보는 남북관계는 중국, 이란, 우크라이나 문제에 비해 후순위로 밀렸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거나 인도적 지원을 하려 해도 미 의회와 정부 내에 반대자들이 많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다시 그의 말다. “북한은 정치인보다 기업인들을 좋아한다. 북한은 자기들 손에 뭔가 쥐어지는 게 없으면 절대 대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게 그들의 속성이다.”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하긴 경제야말로 이념을 떠나 남북의 공동이익 아닌가. 그의 말을 들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북한의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그날 아침 뉴스가 떠올랐다. 재계가 나서서 외국 기업도 입주가 가능한 ‘제2 개성공단’을 논의하자는 게 골자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기업인들이 푸는 접근법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신선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제2개성공단과 관련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내놓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인 증 57%가 ‘입주 잘했다’고 했고 82.2%가 북한 지역 내 또 다른 경협모델의 확산이 필요하다 했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었지만 올해 초 ‘통일 대박론’을 내놓으면서 남북간 신뢰는 많이 깨졌다. ‘통일대박’을 북한은 ‘쪽박’으로 보고 흡수통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교는 이니셔티브(Initiative‘·주도권·자주적 결단력)가 중요하다. 분단 7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미일중러 4대 강국의 각축장이다. 이대로 가면 미중(美中) G2 체제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불안한 줄타기를 하면서 미일 동맹 구도의 종속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 이니셔티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협력 강화가 열쇠라고 생각한다. 북핵 해결, 군사적 긴장완화, 경협, 교류확대 이슈를 우리가 주도하면 주변 강대국도 따라올 수 밖에 없다. 한미관계에 정통한 정치학자 몇 분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중 한 분의 지적이 의미심장했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오래 못 간다.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한다.’인게이지(engage·이해심을 갖고 관계를 맺는 것)정책이 필요하다”

한쪽으로는 대화를 추진하면서 한쪽으로는 비상사태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다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외교 정책 담당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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