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려 있던 서민층 분노… 월드컵 개최가 기름 부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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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反정부시위 격화 왜?
생활비 치솟고 소득불균형 심화… 축제에만 정신 팔린 정부에 반감

축구 강국이자 경제 신흥 대국으로 각광받던 브라질이 갑작스레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AP통신은 18일 “상파울루 등 12개 도시에서 전날 24만여 명의 군중이 시위에 참여한 데 이어 다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진압 경찰대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는 군부 독재 종식 직후이던 1992년 ‘3만 % 인플레이션 진정’ 공약에 실패한 페르난두 콜로르 대통령 탄핵 요구 시위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버스요금 6% 인상’에 반대해 일어난 소규모 집회가 11일 만에 나라를 통째로 뒤흔드는 전 국민 시위로 폭발한 것이다.

미국 CNN방송은 “잔뜩 억눌려 있던 서민층의 분노에 64년 만의 월드컵 개최가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고 보도했다. 갈수록 치솟는 생활비, 열악한 교육환경과 사회복지시스템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 아랑곳없이 내년으로 다가온 ‘세계인의 축제’에만 정신 팔려 있는 정부에 대한 반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지적이다.

‘엿 먹어라 FIFA(국제축구연맹)’라는 구호가 휘갈겨진 인도 위에서 구호를 외치던 교사 타이나라 프레이타스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와 그리스 국민이 벌인 반정부 시위가 우리를 일깨웠다”며 “브라질 월드컵은 가난한 국민을 본체만체하며 부패한 정부와 FIFA의 이익을 위해 세금을 쏟아붓는 행사”라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중국 인도 러시아와 함께 브릭스(BRICs)의 선두에서 달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극심한 소득 불균형이 나라 살림이 기울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질에서 소득 분배의 불공평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최근 10년간 줄곧 0.5를 웃돌았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매우 불균형한 소득 분배 상태라는 뜻. 원자재 붐과 낮은 인플레이션 덕에 기본금리 8∼10%를 유지했던 ‘좋은 시절’이 지나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의 병폐가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브라질 경제 성장률은 0.9%에 그쳤다.

시위는 16일 개막한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 경기가 열리는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지금까지 최소 150억 헤알(약 7조8400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중 고무총탄에 맞아 왼팔을 다친 20대 직공 다니엘 사나브리아 씨는 “FIFA가 축구대회의 안전한 진행을 염려해 정부를 다그칠수록 브라질 국민은 당면한 어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 더 강한 압박을 가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브라질#정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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