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2009년 G20 정상회의때 해킹-도청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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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디언, 스노든 기밀문서 추가 공개
‘영국판 NSA’인 정보통신본부… 인터넷 카페 개설 대표단 유인, 전문가 45명 동원 24시간 감청

2009년 4월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영국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각국 대표단에 대한 컴퓨터 해킹과 전화 도청을 벌였다고 일간지 가디언이 17일 폭로했다. 이 회의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한국 대표단도 참석했다. 도청과 컴퓨터 감시는 같은 해 9월 런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이 내용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국내외 비밀 감청망 실체를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29)이 추가로 공개한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영국 정부가 세계 주요국 수뇌부의 통화 내용을 불법으로 감청하고 컴퓨터를 해킹했음을 폭로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가 “명예를 걸고” G20 회의를 성공시키려 한 것이 도청 및 해킹의 배경이 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정보국(MI5), 해외정보국(MI6)과 함께 영국의 3대 핵심 정보기관으로 ‘영국판 NSA’인 ‘정보통신본부(GCHQ)’는 당시 각국 대표단의 인터넷 및 전화 통화를 가로챘다. GCHQ는 G20 각국 대표단이 주고받은 e메일을 몰래 빼내 분석하고 스파이 프로그램을 설치한 컴퓨터로 행사장에 인터넷 카페를 차려 대표단이 쓰도록 유도했다. 이 인터넷 카페가 함정이었다. GCHQ는 인터넷 카페에서 대표단의 ‘로그인 키(key) 정보’를 확보했다. 가디언은 이를 통해 GCHQ가 외국 요인의 접속 ID와 암호 등을 수집한 것으로 추정했다.

GCHQ는 또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회담 참석자들의 e메일 내용을 빼내고 통화를 도청했으며 전문 분석가 45명을 동원해 대표단의 통화 실태를 24시간 감시했다.

GCHQ는 G20 재무장관회의 때는 각국 대표단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실시간 그래픽 화면으로 구성해 GCHQ 작전실 내 15m 대형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주시했다. 이렇게 분석한 각국의 통화 정보는 바로 G20 영국 대표단에 넘어갔다.

GCHQ는 이때 동맹국인 터키의 재무장관과 대표단에 대한 도청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단의 컴퓨터를 해킹해 남아공 외교부 전산망의 접속권한을 확보하고 G20 및 G8 회의와 관련한 대표단 보고서를 가로챘다. GCHQ는 같은 해 11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 참석자들에 대해서도 도청했다.

문서에 따르면 G20 회의 당시 미국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도청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중부 해러게이트 소재 멘위드힐 공군기지 내 NSA 기지에 있던 요원들은 2009년 4월 1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난 이후 모스크바로 건 기밀 위성전화 신호를 가로챈 뒤 신호에 걸린 암호를 풀려고 했다. 가디언은 “NSA가 러시아 최고 수뇌부의 전화 신호가 전송되는 방식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외국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첩보행위는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도 관행적으로 해온 일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16일 오바마 대통령을 “빅 데이터 대통령”으로 묘사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가진 데이터에 대한 잘못된 시각은 정부가 언제든 사리사욕을 위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영국 G20#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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