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부동산 경기 ‘잃어버린 20년’ 끝낼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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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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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도심 임대료 가파르게 오르고… 새 아파트 1500채 곧 분양 완료
“아파트 사고 싶다” 광고 전단 나와… 아베發 ‘부동산의 봄’ 기대 부풀어

일본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섬의 모습. 운하로 둘러싸인 시바우라 섬에는 49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4개동 있는데 팔겠다는 집주인은 없고 사겠다는 사람만 많아 ‘아파트를
산다’는 광고 전단까지 등장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섬의 모습. 운하로 둘러싸인 시바우라 섬에는 49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4개동 있는데 팔겠다는 집주인은 없고 사겠다는 사람만 많아 ‘아파트를 산다’는 광고 전단까지 등장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파트를 사고 싶습니다. 전용면적 70∼85m², 바다가 보이고 전경이 좋은 곳을 원합니다. 2013년 7월까지 입주했으면 합니다. 예산은 6500만∼8500만 엔(약 7억7200만∼10억1000만 원)을 생각합니다.’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시바우라(芝浦)의 그로브타워에 사는 모리 마사미(森雅美·45·여) 씨는 최근 이 같은 전단을 받고 깜짝 놀랐다. 신규 분양 혹은 미분양 아파트를 판다는 전단은 많았지만 아파트를 사겠다는 전단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브타워 인근 미나토부동산 관계자는 “올해 들어 팔려고 내놓은 아파트 매물이 모두 나갔다. 찾는 사람은 꽤 있는데 팔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부동산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아직 지난해 동기보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래가 활발해 조만간 상승 국면으로 전환될 게 확실하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제한으로 돈을 풀자 부동산 경기가 ‘잃어버린 20년’을 끝낼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도심에서 쾌속전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지바(千葉) 현 후나바시(船橋) 시에는 5동의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난해 여름부터 1500채의 분양을 시작했는데 지난해 말을 지나면서 분양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인근 부동산 측은 “1200여 채가 계약을 끝냈으며 곧 소진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 분양사무소를 찾은 한 30대 부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500만 엔의 주택대출을 받을 예정”이라며 “금리가 낮을 때 은행 빚을 지더라도 사는 게 이익일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 시장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도쿄 신주쿠(新宿) 구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강천석(가명·50) 씨는 “15년간 부동산업을 해왔지만 올해처럼 가파르게 임대료가 오르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일부 도심 지역은 불과 1년도 안 돼 임대료가 30%나 오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신주쿠에 있는 30평형대 아파트 라투르신주쿠의 월 임대료는 지난해 초 44만 엔이었지만 지금은 49만 엔이다. 도쿄 만과 가까운 시바우라의 그로브타워 30평형대 임대료 역시 지난해 6월 30만 엔이었지만 지금은 39만 엔으로 뛰었다. 그나마 나오자마자 곧바로 임대돼 구하기도 힘들다.

부동산 가격이 뛰는 것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 덕분이다. 아베 총리가 공언한 대로 물가가 오르면 하루빨리 부동산을 사는 게 이익이다. 내년 4월부터 소비세(부가가치세)가 현행 5%에서 8%로 오르는 것도 구매 심리를 자극했다. 부동산은 가격이 수억 원대여서 소비세가 1%만 올라도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일본은행이 무제한으로 돈을 풀면서 사상 최저로 떨어진 금리도 부동산 경기 부양에 한몫했다. 대형 은행의 최우대 금리를 적용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변동형 0.8%, 10년 고정형 1.3%다. 임대료로 매달 수십만 엔씩 비용을 낼 바에야 아예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게 낫다.

이 같은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이시자와 다카시(石澤卓志) 미즈호증권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기대심이 너무 선행돼 반영됐다. 고용과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갑자기 부동산 붐이 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소비세 인상 후 거래가 크게 줄어들 수 있는 것도 변수로 작용한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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