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첫 만남에 “추기경 대신 파드레라고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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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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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프란치스코 교황

홍지영 신부
홍지영 신부
새 교황으로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그분은 아르헨티나가 낳은 교회의 일꾼이다.

나는 1986년 14세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신학을 접한 뒤 영성 강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오푸스데이’(신의 사역) 사제가 됐다. 그동안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가 추기경의 교황 선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만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평생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한 ‘할아버지 신부님’이다. 동네 축구팀 산로렌소를 응원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거나 옆집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분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주교좌성당의 작은 고해소에 몰래 들어가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주기도 했다.

추기경이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때 나는 로마 오푸스데이 신학교에 입학했고 2004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귀국했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목생활을 했던 5년 동안 교구 행사 전후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철저하게 추기경은 에미넨차(Eminenza), 주교는 에첼렌차(Eccellenza)로 불러야 하지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달랐다. 첫 만남부터 ‘추기경님’ 대신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몬시뇰’ 또는 ‘파드레’(신부님)라고 부르라고 했다. 유머도 곧잘 즐겨 남미에서 동양인 사제로 겪는 어려움을 넘길 수 있도록 자주 도와줬다.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 소속으로 있는 문한림 신부 등 두 명의 한국인 신부를 많이 아꼈다.

처음에 추기경은 예수회 출신이고, 나는 오푸스데이 소속 사제라 영성적으로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추기경은 교구 안의 모든 단체, 모든 신자를 위해 열정적이면서도 너그러운 모습으로 격려했다.

콘클라베를 위한 여행 준비를 도와주던 신부들이 돈을 모아 추기경의 낡은 구두 대신 새 구두를 사드렸다고 한다. 추기경은 비즈니즈석을 사려 했던 비서신부에게 일반석을 사라고 지시했다. 자가용을 타지 않고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추기경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신자들을 만나고 아버지 모습으로 사제들을 만나는 추기경은 그 흔한 고기 외식도 꺼릴 정도로 검소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제는 평온한 팜파를 떠나 위기에 빠진 세계교회를 이끌게 됐다. 그분이 가진 온유한 마음은 희망을 잃어가는 많은 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홍지영 신부 오푸스데이 한국센터 지도사제
#교황#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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