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냉전시대 상징 ‘쿠바 햇볕정책’ 폐지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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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난민에 주던 영주권 특혜
쿠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타국 밀입국자와 형평성 논란

최근 쿠바 정부가 발표한 주민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에 따라 미국의 대표적인 냉전시대 법안인 ‘쿠바조정법(CRAA)’이 존폐기로에 섰다고 로이터통신이 18일 보도했다.

1966년 제정된 이 법은 미국 영토에 도착하는 모든 쿠바 주민에게 ‘피난권’을 주고 1년 뒤에는 미국 영주권을 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합법적 이민도 엄격하게 통제하는 미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쿠바 주민에게만 이주 이유를 따지지 않고 영주권을 허가해 준 것은 전적으로 냉전의 논리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힘입어 미국 내 쿠바 이민자 수는 현재 10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16일 쿠바 정부가 1961년부터 규제해 온 자국민들에 대한 여행 제한을 전격 해제하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쿠바 주민이 합법적으로 해외여행을 하려면 초청장과 출국비자, 최고 500달러(약 55만 원)짜리 해외여행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쿠바 정부는 개혁개방 조치의 일환으로 내년 1월 14일부터 출국비자와 초청장을 제시하고 발급받던 해외여행허가서를 전면 폐지한다. 임금이 높아 해외로 이주할 가능성이 큰 의사와 기술자와 같은 전문 인력에게는 기존 규제가 여전히 유지되지만 일반 주민은 해당국의 비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국할 수 있게 됐다.

쿠바 정부의 발표에 가장 긴장한 것은 미국이다. 비자발급을 제한해 쿠바에서 미국으로 직접 건너오는 주민들은 통제할 수 있지만 쿠바인이 멕시코나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하면 현행법상 의무적으로 영주권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남미 불법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체포해 본국으로 돌려보내면서 쿠바 주민에게만 예외를 인정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쿠바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마당에 쿠바에만 특혜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도 사실상 사라졌다. 마이애미헤럴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쿠바 주민은 7400명으로 추산된다.

미 국무부는 일단 내년 1월 여행 제한이 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좀 더 지켜보겠다고 16일 밝혔다. 미국의 대선후보들은 아직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쿠바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플로리다 주에서 쿠바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지난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4%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33%가 밋 롬니 후보를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對)쿠바 ‘햇볕정책’을 실시해 여행 제한 조치 등을 완화했다. 롬니 후보는 조지 W 부시 시절의 강경정책을 이어간다는 기조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쿠바조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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