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교수 “中-日 갈등 오래가면 한국 어려워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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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전문가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가 보는 韓中日의 오늘과 내일

이종원 교수가 19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영토 갈등 등으로 혼란스러운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전망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이종원 교수가 19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영토 갈등 등으로 혼란스러운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전망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일본과 중국, 한국이 충돌 모드로 가면 단기적으로 한국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구조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는 최근 와세다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토 문제는 기본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하고 ‘제로섬’ 게임인 만큼 현상을 동결시키고 유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이 교수는 일본에서 이방인의 시각으로 균형감 있고 날카로운 분석을 해 명성이 높다. NHK 토론 프로그램에도 단골 출연하고 있다.

―현재의 동아시아 상황을 진단하면….

“2가지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대두와 미국과 일본의 상대적 쇠퇴에 따른 ‘힘의 변화(Power Transition)’다. 또 하나는 역내 교역비율 55%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상호 의존’ 심화다. 힘의 변화로 그동안 일본이 경제력으로 눌러왔던 과거사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한 일본인 원로 교수는 ‘일본은 최근 100년 동안 아시아를 내려다보고 관계를 맺어왔다. 자신과 대등하거나 강한 아시아와 안정적인 관계를 설정한 경험이 없다. 지금부터 큰 과제다’라고 했는데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두 가지 변화를 균형 있게 통합하는 게 정치의 과제인데 한중일 정치가 모두 불안정한 전환기를 맞으면서 적어도 단기적으로 작은 충돌이 큰 사태로 이어질 위험성이 커졌다.”

―한일 관계 전망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때보다 지금의 한일 관계가 더 안 좋다. 당시는 과거사 문제가 초점이었지만 지금은 물리적 충돌 위험이 있는 영토 문제까지 전면에 부상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 회의석상이나 한일 간 테이블 한가운데 올려놓고 계속 얘기하면 한국도 대응을 안 할 수 없다.”

―일본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의 대두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대항적 내셔널리즘(민족 및 국가주의)이 강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점점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는 데 대한 반발의식, 경쟁의식, 경계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과거 일본의 ‘보통국가론’(평화헌법 개정 통한 재무장)은 일본의 힘이 높아진 데 걸맞은 국제위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의식이 더해져서인지 이전보다 신경질적이 됐다. 또 하나 지금 일본 정치의 주류는 50대 이하 전후 세대다. 이들은 아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역사인식이 약하다. 한국과의 관계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힘의 역전에 왜 이렇게 불안해하나.

“안전보장을 미국에 의존하는데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 아시아와 전후 문제를 처리하면서 충분한 신뢰관계를 만들지도 못했다. 한국이나 중국은 전후 부흥 과정에서 일본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해 불만이 있어도 참았다. 중국이 요즘 ‘우린 참을 만큼 참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맞는 얘기다. 일본은 아시아와 여전히 불신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니까 힘의 변화가 불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일본은 왜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나.

“전후 국제관계를 지배한 힘의 역학이 큰 요인의 하나다. 냉전 구조와 맞물려 아시아는 약하고 분열됐었기 때문에 일본은 반성하고 보상하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안 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이 버티고 있어 유럽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성하고 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후 힘의 관계가 변화하고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떠오르는 세계사적 변화가 있었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생각해서도 역사 문제와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2년 교과서 왜곡 문제 후 나온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담화, 1995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담화 등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번 센카쿠 사태 등을 통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같은 사람이 일본 국익에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앞으로 계속 검증될 것이다. 역사에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단기적으로는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여러 부작용이 나오면서 장기적으로 일본에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갈등의 출구는 있나.

“잘못해서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게임)이 될까 걱정이다. 일본이 국유화를 철회하기는 어렵겠지만 실행을 유예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모든 채널을 동원하겠다고 했으니 애매한 상태로 봉합할 가능성은 있다. 이번에 중국이 세게 나오는 것은 이시하라 지사나 노다 총리 등의 우파적 언동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톤이 느껴진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중국도 피해를 보지만 중국에의 경제 의존도가 커진 일본이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한 점은 일본 정치의 수준 저하다. 정치인들이 동아시아 관계 등 큰 틀에서 생각하지 않고 국내 정치 틀 안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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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원 교수

△ 1953년생
△ 서울대 중퇴, 국제기독교대 졸업
△ 일본 도쿄대 박사(국제정치)
△ 일본 도호쿠대 교수, 릿쿄대 부총장
△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교수
△ 저서 ‘동아시아 냉전과 한미일 관계’, ‘역 사로서의 한일 국교정상화’, ‘북일 교섭’, ‘일본의 국제정치학’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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