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앞에 선 오바마“이란공격 주저 않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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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4일 미국 워싱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워싱턴 컨벤션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유대인들로 북적였다. 미국에 사는 친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주최하는 연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1만400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의 99%가 유대인이다. AIPAC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이며 자생적인 풀뿌리조직이다. 매년 이맘때 워싱턴 컨벤션센터를 달구는 유대인들의 뜨거운 결집력은 올해도 변함없었다.

6일까지 열리는 올해 53회 AIPAC는 전통적으로 참여해온 미국 대통령과 이스라엘 총리 외에 두 사람이 추가됐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다. 이란 핵 개발에 맞서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로 중동지역에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11월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계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10시 45분 오바마 대통령이 행사장에 입장한 가운데 먼저 연설한 페레스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앞서 5분 동안 상영된 동영상 다큐멘터리에서 폴란드에서 태어난 페레스 대통령이 11세 때 팔레스타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자 장내에선 참석자들이 감정에 북받쳐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페레스 대통령은 “이란은 중동을 지배하려는 사악하고 잔인하며 도덕적으로 부패한 정권이다. 이란은 테러의 중심이자 자금지원 세력으로 전 세계에 위험한 존재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베를린과 마드리드 뉴델리 방콕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저지라는 목표에서 한 치의 의견차도 없다”고 미국과의 빈틈없는 동맹을 강조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과 이스라엘의 국익은 동일하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책을 고려하는)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군사적인 대응뿐 아니라 이란을 고립시키는 정치적인 노력과 국제연대,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감시하는 외교적인 노력과 경제 제재까지 모두 병행하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나는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해 참석자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중동 해법과 친이스라엘 정책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유대인들의 우려를 달래는 데 신경을 쓰는 게 역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튿날인 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 내 한국동포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AIPAC 총회에 매년 참가하고 있는 김동석 뉴욕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는 “페레스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을 앉혀놓고 ‘이란 핵 개발은 이스라엘의 이슈가 아닌 미국의 이슈’라며 압박했다. 그는 이번 회의를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주도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에서 AIPAC는 총 3억 달러(약 3360억 원)의 로비자금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총회 기간에 미 상하원 의원 350여 명이 참석하고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조지프 리버먼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이 연설한다.

마지막 날인 6일엔 패네타 장관과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이 연설하기로 돼있다. 공화당 후보들이 10개 주에서 경선을 치르는 ‘슈퍼 화요일’에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영상 메시지를 보낸다.

미국의 거물들이 이처럼 AIPAC에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유대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2.5%인 650만 명에 불과하지만 AIPAC의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이 미국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로비 데이’로 정해진 행사 마지막 날은 의사당을 찾아 유력 의원들을 직접 만나 친이스라엘 정책을 주장한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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