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눈뜬 무슬림형제단 “맥주-비키니 OK”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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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표적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비키니 수영복과 맥주 옹호자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엣삼 엘에리안은 이달 초 이집트 여행업계 인사들을 만나 “맥주와 비키니는 OK”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유력 기업인들이 1월 그를 만나 이집트 관광의 미래에 파상적인 우려를 던진 데 대한 답변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친서구적인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20일 전했다. 올 초 마무리된 하원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만든 자유정의당이 47%의 지지를 받으며 제1당이 됐을 때만 해도 이런 변신은 기대되지 않았다. 일부 무슬림형제단 후보자는 알코올 판매를 금지하고 서구 여행자들이 이집트 해안에서 몸을 가리게 만들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막상 국정을 책임지는 처지가 되고 보니 130억 달러의 산업 가치가 있고 고용 효과가 11%에 이르는 관광산업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무슬림형제단을 움직였다. 권력 교체 이후 437억 달러(약 49조1540억 원)에 이르던 보유외환이 136억 달러(약 15조3000억 원)로 곤두박질치자 경제회생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이 WSJ의 평가다. 무슬림형제단의 외교 분야 고위자문관 엣삼 알핫다드는 “사람들이 배를 채우지도 못하는데 옷을 어떻게 입으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변화된 행보는 다양한 곳에서 확인된다. 최근 많은 무슬림형제단원이 앤 패터슨 주이집트 미국대사의 관저에서 열린 칵테일파티에 참석해 경제 회생 방안을 논의했다. 심지어 일부 단원은 군부 주도하의 이집트 당국이 미국인 민간사회 활동가 16명을 포함한 비정부기구(NGO) 직원과 활동가들을 기소한 것을 비난하기도 했다.

60여 년간 지하운동을 벌였고, 구성원 대부분이 감옥에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양지로 나온 무슬림형제단은 과거에는 이집트를 부채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고 의심했던 국제통화기금(IMF)에 32억 달러(약 3조6000억 원)에 이르는 긴급자금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이슬람 원칙을 앞세워 다수당이 됐지만 국민의 뜻과 현실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갤럽이 지난해 4월과 1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집트인의 54%는 ‘일자리와 경제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했다. 이슬람법 실시를 주장한 응답자는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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