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서 괜히 軍 뺐나” 코 빠진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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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철군 이후 입지 좁아져
식품반입 정식통관 요구 등 이라크 고압적 태도에 당혹… 대사관직원 절반 감축 계획

미국은 최근 이라크에서 길이 60cm가량의 초소형 무인 정찰기를 띄우는 문제를 놓고 이라크 정부와 협의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18일 미군이 완전 철수한 후 외교시설 보호나 외교관 이동 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의 아드난 알아사디 내무장관 직무대행은 “여기는 이라크의 하늘이지 미국의 하늘이 아니다”며 ‘주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미군 철수 이후 급변하고 있는 미국과 이라크의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7일 미군 철수 이후 불과 2개월이 지나지 않아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은 이라크의 ‘훼방행태(obstructionism)’에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군 주둔’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바그다드 주재 미국 외교관들이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과 면담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인이 이라크에 입국할 때 누리 알말리키 총리실이나 때로는 총리가 직접 승인하지 않으면 비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쿠웨이트를 거쳐 반입돼 미 대사관에 들어가는 식량과 과일 샐러드 커피 설탕 등 기초 물품 조달에도 애로를 겪는다. 과거에는 미군의 호위하에 무사 통과됐으나 지금은 각종 통관 서류를 요구하는 등 까다롭게 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은 ‘치킨윙의 날’(닭 날개를 배식하는 날)에 한 사람당 닭 날개를 6개로 제한할 정도로 물품 공급에 제약을 겪고 있다.

미국은 곧 대사관 인원을 절반가량으로 줄일 계획이다. 현재 대사관에는 파견 외교관 2000명과 현지 채용 1만4000명 등 1만60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한 해 60억 달러의 유지비가 든다. 바그다드 미 대사관은 2009년 1월 ‘그린 존(안전지대)’에 7억5000만 달러를 들여 개관할 때 해외 공관 중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 호화 논란이 없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대사관 인원 축소에 대해 “대사관이 너무 비대하다는 지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라크 내에서 미국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중동 전문가 케네스 폴락 연구원은 “과거 미군이 해왔던 것을 대사관 등에서 계속할 수 있다고 국무부가 생각한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현재 북부 지대 안전 상황을 모니터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국제개발기구가 맡고 있는 사업 지역을 방문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인들은 “미국은 이라크를 중심으로 중동을 경영하려고 하고, 바그다드 대사관을 그 전초기지로 활용한다는 큰 포부를 갖고 있는 것 같다”(수니파의 나히다 알데이니 의원)는 의혹을 갖고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전언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대사관 인원을 줄임으로써 비용 감축은 물론이고 ‘좀 더 조용하고 낮은 자세로’ 이라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더 큰 레버리지 역할을 할 수 있고 나아가 ‘미군 주둔 시절’의 반미 감정도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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