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구촌 새권력/대만]‘베이징 프렌들리’ 손들어준 대만국민… ‘후의 손’도 올라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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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민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양안(兩岸) 안정론’을 내건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14일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중국과 대만 관계는 안정과 협력이라는 기존 구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여) 주석의 ‘대만 주권론’은 유권자들의 가슴을 뛰게 했지만 이성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 현실적인 대만, ‘베이징 프렌들리’ 선택


승리가 확정된 14일 밤, 마 총통은 비가 쏟아지는 타이베이 국민당 중앙당사 앞 연단에 서서 “안정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전진해 갈 것”이라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안정’은 선거 캠페인 기간 마 총통이 내건 핵심 키워드였다. 대중(對中) 관계에서 실리를 택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AP 등 외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베이징 프렌들리(친중국)’의 승리로 해석했다.

마 총통은 그동안 선경후정(先經後政·경제가 우선이고 정치는 나중이다)과 선이후난(先易後難·쉬운 걸 우선 풀고 어려운 건 나중에 해결하자)을 주장해왔다. 반면 ‘민진당의 잔다르크’로 불린 차이 주석은 “마 총통이 대중 경제의존도를 높여 대만의 정체성을 훼손시켰다”고 비난해왔다. 차이 주석의 이런 주장은 한때 여론조사에서 마 총통을 추월할 정도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안정론에 대한 지지는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마 총통 취임 직후인 2008년 말 통우(通郵·우편 개방), 통항(通港), 통상(通商) 등 3통 실시와 2010년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중국-대만 FTA) 발효 이후 대만은 안정적 성장을 해왔다. 중국에 진출한 타이상(臺商·대만 상인)은 100만 명이 넘었고, 2010년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24년 만의 최고치인 10.8%를 기록했다. 타이상 20만 명이 차이 후보의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귀국 투표’를 한 것은 대만인들의 저변에 흐르는 변화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 또 다른 승자, 후진타오


중국은 잔뜩 들떴다. 그동안 대만 선거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던 언론들은 마 총통의 승리가 발표된 14일 밤부터 일제히 대만 선거 기사를 쏟아냈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열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베이징(北京)에서 발행되는 신징(新京)보는 15일자 1면을 대만 선거 결과로 장식했다.

중국이 마 총통의 재선에 고무된 이유는 현재의 양안 관계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 연말 권력교체를 앞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양안 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남중국해 영해 분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만큼 마 총통의 재선은 외교적 고민 하나를 덜어준 셈이다.

이번 선거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성과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후 주석은 그동안 경제로 정치를 제압한다는 ‘이경제정(以經制政)’을 양안정책의 핵심 가치로 삼아 왔다. ECFA 발효는 후 주석의 대표 공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후 주석의 양안외교가 결실을 본 사례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만공작판공실은 15일 담화문에서 “최근 4년간의 실적은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이 정확한 노선일 뿐 아니라 대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양안 관계의 현상 유지를 원했던 미국도 이번 선거에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백악관은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양안의 평화와 안정, 관계 개선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양측이 최근 수년간 지속해 온 인상적인 협력 관계를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 마잉주호의 선택과 과제


이번 선거 결과를 마 총통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4년 전 마 총통은 17%포인트 차로 압승했지만 이번에는 6%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대선과 같은 날 실시된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차이 후보가 소속된 민진당이 기존 27석에서 40석으로 의석을 늘리며 약진했다.

마 총통은 중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힌 지난해 10월 무렵 차이 주석에게 지지율이 역전됐다. 과도한 친중(親中)은 오히려 마잉주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선거운동 기간 수차례 “양안 지도자가 서로 방문하거나 만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차이 주석이 집중 공격했던 빈부격차 확대와 청년 일자리 문제도 숙제로 남았다. 대만 경제는 2010년에는 호경기를 누렸지만 지난해에는 성장률이 4.6%로 급락했다. 유럽 부채 위기 때문이었다고는 해도 선거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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