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콥트교도 ‘눈물의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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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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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으로 박해 심해져… 해외탈출 1년간 10만 명 넘어

“아빠, 산타 할아버지는 이집트엔 안 오는데 미국엔 오나 봐요.”

크리스마스이브, 뉴욕 밤거리를 구경하던 세리엔 메하니 엘골리 씨(39)는 열두 살 된 딸 마리암의 말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조국을 버리고 미국에 온 지 4개월. 이집트에서 콥트교도로 겪었던 고초를 자식만은 모르길 바랐다. 그 조막만 한 가슴에도 주위의 냉대는 생채기로 남았던 걸까. 록펠러센터 대형 트리 앞에서 꽃처럼 환히 웃는 마리암을 보며 엘골리 씨는 다시 한 번 ‘망명’을 선택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의 ‘재스민 혁명’을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이집트 인구의 10%(약 800만 명)를 차지하는 기독교 공동체인 콥트교도에게 혁명은 악몽의 시작이었다. 공권력이 취약해진 틈을 타 이슬람교도들이 눈엣가시 같던 기독교인들을 대놓고 박해했다.

▶본보 10월 11일자 A20면 이집트 콥트교도-軍 충돌 24명 사망

엘골리 씨 가족처럼 재스민 혁명 뒤 이집트를 빠져나간 콥트교도가 무려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이집트 콥트교도들의 엑소더스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다. 카이로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달랴 아티아탈라 씨(36)는 올봄 시위대 습격으로 화랑이 불에 탔다. 2월 미국에 온 키롤로스 안드라우스 씨(23)는 퇴근 때마다 대문에 “죽여버리겠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엘골리 씨는 감기 걸린 딸을 병원에 데려갔다 떠날 결심을 굳혔다. 의사가 어이없게도 ‘이슬람 할례’를 하면 낫는다며 수술을 강요했기 때문.

그러나 어렵사리 이집트를 탈출해도 ‘장밋빛 인생’이 보장되진 않는다. WSJ에 따르면 이집트인의 미국 망명 신청은 9월의 경우 835건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403건)의 2배가 넘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통과 가능성도 낮아졌단 뜻이다. 대부분 여행비자로 무작정 떠나와 길게는 1, 2년씩 걸리는 심사기간 동안 생활도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이들을 도우려는 움직임이 미 정부에서도 일고 있다. 캐슬린 피츠패트릭 국무부 부차관보는 “콥트교도 망명 신청자를 도울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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