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자리, 군부가 노린다” 들끓는 이집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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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국회 감독 안받는 헌법 원칙 제시… 5만명 시위… 2명 사망 930명 부상
28일 총선 앞두고 정국 혼란 가중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 이후 9개월 만에 치러지는 이집트의 역사적인 첫 하원 총선(28일)을 앞두고 반군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군부가 정권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 민주화의 첫걸음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열흘 앞둔 18일 카이로에서 군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시위대 2명이 숨지고 930여 명이 다쳤다고 CNN은 전했다. 이날 시위는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가 2주 전 발표한 신헌법 기본 원칙이 화근이었다. 원칙에는 총 100명의 헌법위원회 위원 중 80명을 군이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내부 문제와 관련된 모든 법안에 군의 거부권 행사를 인정하도록 했다. 결국 군이 국회의 관리와 감독을 피하도록 해 새로 뽑힐 국회의 역할을 무력화한 것이다.

또 무바라크 퇴진 후 임시로 권력을 잡은 군사위가 ‘6개월 내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고, 최소 2013년 이후로 대선 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도 반군부 정서를 키우고 있다.

28일의 하원의원 선거와 내년 1월 28일로 예정된 상원의원 선거를 발판으로 정권 장악을 노리는 무슬림형제단을 포함한 각 정파들은 연대해 반군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18일 시위도 이런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이날 청년 시위대를 포함한 수만 명은 이집트 민주화의 거점인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 타도’를 외쳤다.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정권하에서 활동이 금지됐던 최대 규모의 반무바라크 세력으로 무바라크 퇴진 후 자유정의당을 창당한 무슬림형제단은 이번 총선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타임지는 복잡하고 모호한 선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총 498석을 놓고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지역구 구분이 모호할뿐더러 선거운동 기간도 지나치게 짧다. 또 선거가 약 6주간 3차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도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참여의지를 떨어뜨린다. 28일 총선은 9개의 행정구역에서만 선거가 치러지며, 나머지 지역은 2차(12월 14일), 3차(1월 3일)로 각각 나눠서 진행된다. 또 필요할 경우 1, 2, 3차에 걸쳐 선거 1주일 뒤에 결선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군소 정당 및 후보자 난립 현상도 심각하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28일 총선에 출마 등록을 한 후보는 6700여 명, 정당은 47개다. 무바라크 집권 당시 국민민주당(NDP)의 사실상 1당 독재에 의해 장악됐던 30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한편 이집트 내 반군부 정서 확산에 대해 미국의 계산은 복잡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군부가 물러나지 않는 것은 미래 불안 요소를 심는 행위나 다름없다”며 “민정 이양이 늦어지면 이집트인들이 새로운 역사를 쓸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평화 유지, 민주화 이후의 이집트 안정화를 위해 미국은 이집트 군사위와의 관계 조정에서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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