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이드알피트르”… 반군들 고향 앞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29일 오후 트리폴리 순교자광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트리폴리 항구엔 동부 벵가지로 가는 배편을 구하려는 리비아인 1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내전이 사실상 끝나면서 하나둘씩 고향으로 떠나는 반(反)카다피군들이다. 무함마드 아비디 씨(22)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트리폴리에 왔다가 내전에 가담하게 됐다”며 “이제 가족과 함께 라마단을 끝내고 ‘이드알피트르(이슬람 명절)’를 즐기기 위해 서둘러 집에 가려고 한다. 배 편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트리폴리 서부 쇼핑가 구트샤알 거리의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열었다. 바로 하루 전인 28일 대부분이 셔터를 내린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트리폴리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정상을 되찾고 있다. 아직 공항은 개방되지 않았지만 항구가 지난 주말 문을 열었고 슈퍼마켓과 주유소 등도 영업을 재개하는 모습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조금씩 정상화되는 도시를 보면 트리폴리에 안정이 찾아온 듯하지만 이들에겐 독재자 축출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 범람하는 총기

트리폴리는 아직 매우 위험한 도시다. 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는 반군들이 모두 총을 들고 있다. 불안한 시민들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당수가 총을 갖고 있다. 그리고 탄창마다 실탄이 가득 들어 있다. 조금만 주의를 안 하면 총기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게다가 반군 청년들은 아직도 극도로 흥분한 상태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해방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에 가득 차 있는 이들에게서 차분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29일 트리폴리에서 만난 이윤규 전 한인회장은 “반군들이 축포를 쏘다가 잘못 격발해 동료가 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트리폴리 위성도시 잔주르에 사는 교민 박경옥 씨(54)도 “반군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다른 반군의 종아리에 총을 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했다.

○ 치안유지, 경제안정 등 과제 산적

혁명 후 리비아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테러와 보복 범죄 등 각종 폭력으로부터의 안정이다. 반군의 일원으로 트리폴리 항에서 물류관리를 맡고 있는 피투리 알바쉬 씨(25)는 “항구에 폭발물을 갖고 오는 정부군이 있을 수 있어 보안검색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테러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반군 과도국가위원회(NTC)는 카다피 정부에서 일했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요르단이나 레바논 보안업체에 이들에 대한 경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에 가담한 청년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트리폴리에서 기자가 만난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나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번 혁명이 리비아의 정치적 발전은 이뤘지만 경제적 번영까지 보장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새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이들이 사회혼란의 진원지로 떠오를 소지가 크다. 특히 반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은 새 정부에서 요직 등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군의 무기를 회수한 뒤 제대로 된 경찰력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가 내전으로 회사가 철수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는 유세프 파토리 씨(34)는 “리비아인들은 나라를 처음부터 재건해 보려는 의지가 크다. 반군들도 혁명 후 정치적 지위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심 없이 일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