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요새 함락]카다피 고향서 최후의 결전… 반군 “48시간 안에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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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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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반(反)카다피군은 21일 트리폴리에 입성한 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가 있는 밥알아지지아 요새 500m 앞까지 진격했다. 카다피 측의 격렬한 저항으로 장기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공군력과 반군의 기세 앞에 카다피의 철옹성은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반군은 23일 공격을 시작한 지 불과 5시간 만에 42년 철권통치의 상징인 요새를 함락했다.

○ 결정적 장면

‘카다피의 펜타곤’으로 비유되는 밥알아지지아 요새는 카디피군 최후의 보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견고했다. ‘요새 함락 전투’는 초기에는 흡사 중세 공성(攻城)전을 연상케 했다. 두께 0.9m, 높이 3.7m의 견고한 콘크리트벽 뒤에 몸을 숨긴 카다피군은 탱크포 등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반군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반군은 쉽게 요새를 점령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토의 폭격기가 서쪽 벽을 무너뜨리자 이날 오후 3시경 반군 수백 명이 한꺼번에 요새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로부터 불과 2시간 남짓 지난 오후 5시 15분 요새에 반군 깃발이 올라갔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반군은 벙커와 터널 등을 말 그대로 ‘이 잡듯’ 뒤졌지만 카다피를 찾을 수 없었다. 생포된 카다피 호위병이 반군에게 총 개머리판과 발로 마구 구타당하는 장면이 알자지라 카메라에 잡혔다. 카다피 동상이 있던 지점에는 머리에 총을 맞은 시신이 담요에 대충 싸여 방치돼 있는 등 여기저기서 카다피군 시신이 목격됐다.

무스타파 압둘 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요새 함락 직후 “21일 트리폴리 입성 후 사흘간의 전투로 400여 명의 카다피군이 전사하고, 2000여 명이 다쳤으며 600여 명이 생포됐다”고 밝혔다. 요새 안에서는 카다피군이 급히 도망가면서 버리고 간 무기도 대량으로 발견됐다. 흰색 건물 두 채에서 권총과 소총 기관총 등이 무더기로 나왔으며 수천 정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 마지막 격전지 ‘수르트’

밥알아지지아 요새 함락에도 불구하고 카다피 원수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는 23일 요새 함락 수시간 뒤 친카다피 성향의 알라이TV에서 “나는 트리폴리에 있다”고 밝히고 반군을 “쥐새끼들” “악마”로 지칭하며 주민들에게 반군들을 “쓸어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흡사 승자와 패자의 표정이 뒤바뀐 듯한 형국이다.

그가 거점을 내주고도 호기를 부리는 이유는 반군에 잡히지 않고 은신생활을 지속하며 시간을 번 뒤 다시 세력을 규합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호응하듯 트리폴리에서는 여전히 카다피군이 활개치고 있다. 트리폴리에 들어간 외신기자 대다수는 수도 한복판 릭소스 호텔에서 요새 함락 하루 뒤인 24일까지 카다피 친위대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났다. 호텔 입구를 막고 있는 카다피군의 저항에 반군의 진입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요새 안에 있던 반군도 카다피 지지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저격과 포탄 공격을 받고 있다. 정치범들이 수감돼 있는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는 24일까지 정부군 통제하에 있으며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카다피군 저격수에 의해 봉쇄됐다. 리비아 국민도 카다피의 광기 어린 육성연설을 듣고 카다피가 보복을 위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날 트리폴리에서는 카다피군이 정수처리장에 독극물을 살포했다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이 수도꼭지를 잠그고 물을 마시지 못하며 공포에 떨기도 했다.

반군에 밀린 카다피군 주력은 수르트로 이동해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수르트는 트리폴리 동쪽 373km, 반군 거점인 벵가지에서 서쪽으로 344km 떨어진 리비아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도시로 인구 15만 명의 대다수가 카다피가 부족장인 카다파 부족이다.

수르트가 리비아 사태의 최후 격전지가 될 개연성이 큰 가운데 도시에선 어린아이들까지 무기를 들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편 반군도 무력을 수르트로 이동시켜 결전을 벼르고 있다. 벵가지에서도 지원군이 이 도시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 측은 수르트를 48시간 안에 점령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 대량살상무기 우려 증폭


리비아 사태가 반군의 승리로 굳어져 가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리비아에 있는 화학무기와 재래식 대량살상무기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다피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최후의 항전을 하거나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이 무기를 입수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비아에는 겨자가스와 스커드미사일, 대전차로켓 등 재래식 무기와 핵 원료 물질 등이 상당량 비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화학무기는 노후화돼 심각한 군사적 위기가 아니라고 평가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특정 다수에게 심각한 위해를 입힐 수 있다. 리비아에 24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커드미사일도 우려되는 대량살상무기다. 카다피군은 22일 수르트에서 스커드미사일 3발을 반군이 장악한 도시에 쏘았다. 이 밖에 대량살상무기를 장악한 테러조직원들이 유럽을 상대로 보복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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