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는 외국 부자, 물려주는 한국 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6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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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초가 되면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한적한 시골마을 오마하에는 미국은 물론 외국에서까지 수많은 투자자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몰려든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워런 버핏처럼 큰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것에 집중되지만, 주주들의 질문 중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 중 하나가 기부와 부(富)의 사회 환원 문제다.

대형 체육관을 가득 메운 투자자들은 버핏에게 "막대한 부를 자녀에게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고 묻지만 버핏의 입장은 확고하다.

자신의 부는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며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유산이 아니라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돈을 버는 법)'이라는 것이다.

버핏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오다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 회장빌 게이츠와 함께 다른 갑부들에게 재산 기부를 독려하는 기부 캠페인까지 착수했다.

국내에서 범(凡)현대가의 계열사들이 50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을 만들기로 하면서 부유층의 재산 사회 환원과 기부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기부가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탈·편법을 쓰지 않고 정당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만큼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유층의 책임감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록펠러에서부터 빌 게이츠까지 많은 갑부가 자선재단 등을 만들어 교육이나 사회복지, 빈곤타파 등을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원조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모델이 확립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저개발국가의 복지와 교육개발 운동을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 부부는 지금까지 약 300억달러를 기부했다.

게이츠는 지난해 워런 버핏 회장과 함께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재산의 절반 이상을 공익재단이나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 운동에는 오라클의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과 '갑부' 뉴욕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 CNN의 창업주 테드 터너,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 등 유명 참여자가 70명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3대 사회공헌 재단인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포드재단은 모두 사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인이 사회사업을 위해 세운 재단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철도와 운송, 석유 사업에 투자해 큰돈을 번 뒤 인생의 후반부를 사회사업에 바쳤다. 뉴욕의 카네기홀을 비롯해 카네기공대, 카네기재단 등을 설립했고 전 세계에 2천500개 이상의 도서관을 만드는데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왕 록펠러는 시카고대학과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기아근절과 교육 등에 많은 공헌을 했고, 미국 자동차업계의 아버지인 헨리 포드는 1936년 5억달러를 들여 만든 포드재산을 통해 가난 퇴치와 복지 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카네기는 "돈이 귀한 것은 그것을 옳게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옳게 얻은 것을 옳게 쓰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면서 부자들이 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갑부이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1위 부자인, 홍콩청쿵(長江) 그룹의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기부와 사회 공헌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개인 순재산이 265억달러 가량으로 알려진 리 회장은 30년간 차를 바꾸지 않고 고무 밑창을 덧댄 구두를 신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지만, 재산의 3분의 1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기부와 사회 공헌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런 거부들의 재산 기부 외에도 각종 상을 받은 사람들이 상금을 기부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동원해 불우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등의 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학교 등에서는 난치병에 걸린 아기들을 위해 학생들이 용돈을 쪼개 도와주는 등 기부 문화를 통해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이나 여건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런 생활 습관과 사회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비록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축적한 재산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고 대중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국내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범현대가의 재단 설립이 그동안 이뤄진 재벌그룹의 형식적인 기부와 달리 외국의 사례들처럼 진정하고 순수한 기부 문화를 정립해 나눔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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