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영화 같았던 칠레 광원 33명 생환’… 새드엔딩으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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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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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일간의 암흑이 끝났을 때 그들 앞엔 눈부신 환희만이 펼쳐지는 듯했다.

지난해 8월 5일 칠레 북부 산호세 구리광산 지하 700m에 갇혔던 광원 33인이 69일 만에 캡슐을 타고 한 명씩 올라올 때 지구촌은 환호하고 감격했다.

생환 후 이들의 삶은 장밋빛으로 펼쳐지는 듯했다. 밀려드는 초청 행사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꿈같은 삶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CNN 특별 프로그램 촬영차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했다. 12월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축구 경기도 관람했다. 올 1월에는 가족 동반 디즈니랜드 투어를, 2월에는 이스라엘 여행을, 6월엔 그리스 일주를 무료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 데 이어 영화 ‘블랙스완’의 제작자로부터 영화화 제의까지 받고 판권을 넘겼다.

사고 후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실제로 행복할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구출된 광원 33인 중 18명은 광산 복귀를 희망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들을 고용했던 광산회사는 빚더미에 몰려 파산을 신청했다. 생환 광원인 파블로 로하스 씨(47)는 “(광산 일을) 16세 때부터 해와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광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누가 나를 고용해줄 것인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출판권과 TV 출연료로 거금을 챙겼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지만 광원들은 고개를 젓는다. 호르헤 갈레귈로스 씨(57)는 “많은 사람은 우리가 돈을 벌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칠레인 광산 재벌 레오나르도 파카스 씨가 1인당 500만 칠레페소(약 1147만 원)를 준 것이 전부라고 광원들은 설명했다.

나름대로 기반을 닦은 이들이 있기는 하다. 지하 갱도 속에서 영적 지도자와 같았던 호세 엔리케 씨(57)를 비롯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연자로 변신해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생존 광원 대다수는 “나갈 돈은 많은데 고정 수입이 없어 걱정”이라며 울상이다.

신체적 후유증도 만만찮다. 지하에 갇혀 있는 동안 생체리듬이 흐트러진 데다 트라우마가 겹쳐 밤에도 서너 시간밖에 잠을 못 잔다. 규토 가루와 먼지가 폐에 쌓여 규폐증(硅肺症)에 걸린 환자만 3명이다. 이들을 포함해 14명은 더는 일을 할 수 없어 결국 은퇴 신청을 했다.

“매일 7개의 약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는 호세 오제다 씨(48)는 후유증으로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2월 재취업해 광산에 나가 일하려 했지만 광산 입구부터 심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는 “앞이 캄캄해지고 땀이 줄줄 흐르더니 몸이 떨리더라”고 회상했다. 이후 두 번을 더 시도했지만 공포감에 사로잡혀 광산 근처에조차 갈 수 없었다.

이들은 지난달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CNN이 전했다. 영세광산에 대한 안전 규제를 제대로 못해 사고가 났다는 게 그 이유다. 그들은 소송에서 1인당 배상금 54만1000달러(약 5억6700만 원)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사연에도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호화여행을 다녀오고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을 팔았다’는 인식이 퍼짐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진정성을 의심하게 됐다.

사고 1주년을 맞아 그들을 위한 종교행사와 정부 차원의 기념식이 5일 거행될 계획이지만 광원들은 탐탁지 않아 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광산으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지 그뿐”이라고 말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생존 광원들을 다시 컴컴한 곳으로 내몰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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