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디 중국 ‘속도전’]中, 항모- 우주정거장 이어 ‘고속철 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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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첫 개통뒤 2년만에 고속철도망 71배로 늘어과시용 공기 단축… ‘과속’ 부작용 우려도

중국이 징후(京호·베이징∼상하이·호는 과거 상하이 일대를 지칭했던 글자) 고속철도를 개통하기에 앞서 27일 베이징(北京) 주재 외신기자를 초청해 시승식을 한 배경은 단순히 철도 개통 시승에 그치지 않는다. ‘만만디 중국’이라는 통념을 깨며 2년 앞당겨 개통된 이 고속철은 중국이 자존심을 걸고 매달린 속도전의 산물이다. 다음 달 1일 공산당 창당 90주년에 맞춰 해상, 우주에 이어 ‘대륙 굴기(굴起·떨쳐 일어남)’를 과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규모 면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올 1월에는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베이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있는 시간에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서 중국의 첫 스텔스 전투기 ‘젠(殲·섬멸한다는 뜻)-20’을 시험비행했다. 다음 달 1일 창당일에는 첫 항모의 진수식이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리고 달 탐사선을 보낸 중국이 올 하반기에는 우주정거장 건설의 전 단계로 우주에서 무인우주선 도킹을 처음으로 시도한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경쟁력으로 ‘세계의 공장’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매우 단편적이다.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인 일본의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된 것은 1964년 10월이다. 중국에서 처음 개통된 고속철도는 2008년 8월 1일 징진(京津·베이징∼톈진) 고속철도로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때이다. 일본과 중국 간에는 고속철도 개통과 올림픽 개최가 나란히 44년 차가 난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고속철도 산업의 발전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으며 세계 제패를 위한 행보를 상당히 진행시킨 상태다. 먼저 국내적으로 ‘4종(縱) 4횡(橫)’의 중장기 고속철도망 계획에 따라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며 거미줄 같은 철도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징후 구간은 4종 4횡 구간 중 ‘종 1’ 구간이다. 2008년 징진 구간 117km 개통 이후 2010년 말 8358km로 70배 이상 늘어났다. 2015년에는 1만6000km로 늘어날 것으로 중국 철도부는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서부를 제외하면 국내 주요 도시와 홍콩까지를 ‘한나절 생활권’으로 좁힐 계획이다. 베이징에서 홍콩 구간은 고속철도 연결이 완공되면 현재 23시간에서 8시간가량으로 단축된다.

주변 국가와의 고속철도망 확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노선은 멀리 유럽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횡단 구간 등 세 갈래다. 중국공정원은 지난해 3월 고속철도 연결 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가 17개국에 이른다고 밝혔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대부분 노반부터 새로 건설한다. 기존 철로를 개보수해 고속철도로 바꾸는 곳은 극히 일부분이다. 고속철도 건설사업 자체가 내수를 촉진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전후방 효과도 크다.

중국은 이처럼 국내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고속철 기술로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1290km의 고속철도 사업에 의향서를 제출한 것이 대표 사례다. 150여 년 전 미국이 철도시대를 열 때는 ‘쿠리(苦力)’라 불린 중국 노동자들이 철길을 닦았지만 21세기 고속철도 시대는 중국 기술이 활개를 칠 기세다.

이미 중국이 수주한 외국의 고속철도 구간도 적지 않다. 2009년 8월 베네수엘라가 발주한 75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공사 중 티나코∼아나코 구간(총 471.5km)을 수주했다. 그해 2월에는 프랑스 알스톰과 합작한 컨소시엄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를 잇는 60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 중 1단계 사업(18억 달러)을 따냈다.

물론 중국 고속철도의 급속한 팽창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막대한 건설비에 비해 승객 확보가 안 되면 건설비용 회수가 늦어져 재정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징진 고속철도가 연간 이용객을 3800만 명으로 예상했지만 이듬해인 2009년 1800만 명에 그친 것이 지적된다.

고속철의 기술력과 안전성도 아직 충분히 검증된 단계는 아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지반 함몰이 발견되는 등 부실공사 우려도 없지 않다. 저우이민(周翊民) 전 철도부 부총공정사는 지난주 “중국이 ‘세계 제일’을 추구하기 위해 시속 300km밖에 낼 수 없는 외국 기술을 들여와 생산한 열차로 중국 내에서는 350km 내지 380km까지 달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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