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빈라덴 추적의 드라마 이 한통 전화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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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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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특종 WP 밥 우드워드 美추적-사살 전말 상세보도

‘빈라덴 추적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7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WP)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등 탐사보도로 유명한 WP의 밥 우드워드 대기자(68)는 이날 1면 머리기사와 8면 전체로 이어지는 긴 기사에서 빈라덴 은신처에 대한 미국의 추적과 공습 과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빈라덴의 심복 ‘아부 아메드 알쿠웨이티’(가명)는 지난해 옛 친구에게서 “어떻게 지내냐. 보고 싶었다”며 한 통의 안부전화를 받는다. 알쿠웨이티의 답은 모호했다. “예전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다시 같이 지내고 있다.”

그러자 친구는 잠시 침묵한 뒤 “신의 가호를 빈다(May God facilitate)”며 전화를 끊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대화였지만 침묵의 의미는 컸다. 미 정보당국은 알쿠웨이티가 다시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포착했다. 미 정보당국자는 “이 순간이 빈라덴 추적에 대한 영화(movie)가 시작된 시점이다. 우리는 10년 동안 추적해 온 빈라덴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다다랐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알쿠웨이티는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4년 이상 추적당하던 인물. 정보당국은 여러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원을 이용해 은신처를 찾아냈다. 3층짜리 건물에는 전화선과 인터넷선이 전혀 없어 첨단도청기술도 무용지물이었다. 알쿠웨이티는 전화를 하거나 휴대전화 배터리를 교체할 때조차 90분 동안이나 차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정보당국은 위성으로 저택을 면밀하게 감시한 결과 한 남자가 매일 안뜰에서 1∼2시간 거니는 것도 확인했다.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국가안보 보좌관들은 작전실행을 놓고 무인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옵션도 고려했지만 남자를 폭격할 경우 그가 빈라덴이었는지를 알 수 없고 폭격에 실패할 경우 도망칠 게 뻔해 지상전을 택했다. 작전시간이 길어지면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어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무엇이든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빈라덴이 분명하게 항복할 경우 체포하라는 지시도 함께 내려졌다.

빈라덴 사살 후 그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키가 6피트(약 183cm)인 네이비실 대원 1명이 시신 옆에 누워 키를 재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보좌관들에게 “이번 작전에 6000만 달러짜리 헬리콥터가 제공됐는데 (키를 잴) 줄자 하나 살 돈이 없어 누워서 키를 쟀느냐”고 농담했다.

빈라덴 사살 작전에 관여한 여러 당국자를 만나 당시 작전 과정을 재구성해 낸 우드워드 대기자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이후에도 베일에 싸인 미 행정부 내 정책결정 과정을 심층 취재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기록하는 기자로서의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는 이라크전쟁 결정 및 진행 과정을 취재해 밝혀냈다. 노(老) 기자의 끝없는 현장탐구가 베일 속의 역사를 복원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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