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들었지만… 리비아戰, 출구를 잃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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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전쟁이 이념적 성격과 전쟁의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현대 들어 국제사회가 개입한 전쟁 가운데 좌우(左右)나 선악의 대치점을 구분하기가 가장 어려운 전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독재에 맞선 시민의 항쟁’인가, ‘지배부족 對 소외부족의 내전’인가

우선 이번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기본적으로는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 대(對) 독재학살세력의 대결구도지만 동시에 부족 간, 지역 간 대립 양상도 띠고 있다.

반카다피군이 승리한다고 해서 리비아가 민주화된다는 보장도 없다. AP통신 등 외신은 반군이 ‘무아마르 카다피를 무력으로 퇴진시키자’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가 물러난 후 어떤 리비아를 만들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벵가지에서 반군들에게 물어봐도 일부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일부는 이란 같은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해, 또 다른 일부는 카다피 부족이 독점한 석유 이권을 빼앗기 위해 참전했다고 대답하고 있다는 것.

반군의 대표조직인 과도 국가위원회 구성원들은 서방에서 교육받은 인사들이 주축을 이뤘기 때문인지 헌법과 선거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를 이상향으로 삼고 있지만 일부는 이란 같은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해 총을 들었다고도 한다. 방학 중에 반군에 가담한 대학생 압델 살람 리가이 씨(23)는 “우리는 꾸란(코란)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원한다”고 했다. 이런 제각각의 지향점 때문에 반군 세력을 민주주의 세력이라고 쉽게 단정짓기 힘들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 소속인 리처드 루거 의원(공화당)은 “카다피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이번 전쟁을 촉발한 2월 중순의 민주화 시위는 시민들의 순수한 민주화 염원에서 비롯됐지만 내전으로 진행되면서 카다피 체제하에서 박해받던 부족과 지배부족 간의 내전으로 전환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방은 반군과 정부군의 교착상태를 끝내려면 반군에 대전차용 무기와 대공 미사일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기 지원이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을 키워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봐 주저하고 있다. 실제 이라크에서 미국에 대항해 싸웠던 알카에다 전사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리비아 동부 출신이 많았다.

○ 좌우 강경파가 동시에 중도파 공격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당시 보수파는 전쟁을 지지하고 진보파는 강력히 비판했던 것과 달리 현재 미국에서는 진보 보수 양측이 중도적 입장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분명한 목표가 없는 리비아 전략을 비판하는 공개서한까지 띄우며 공격했고, 민주당 하원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출구전략도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비판했다.

서방의 반전주의자들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도 과거엔 보기 힘든 일이다. 미국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어 반미·반전주의자들의 공격 타깃이 흐릿해진 것이다. 서방의 전쟁 개입을 비난하면 “그럼 당신은 시민을 학살하는 카다피 편이냐”는 반박을 살 수 있어 전쟁에 대한 찬반을 택하기도 까다롭다.

○ 인도주의 잣대는 정확한가

국제사회의 개입은 카다피군이 시위 초기 비무장 시위대를 공군기까지 동원해 무차별 학살한 데서 논의가 시작됐다. 유엔 헌장의 ‘시민 보호 책임(R2P)’이라는 명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민 보호 책임을 정권 교체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지는 논란거리다. 정권 교체가 목표가 아니라면 카다피 원수를 축출하지 않은 채 리비아 사태를 어떻게 끝낼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도 없다.

반군의 일부 병사가 리비아 내 아프리카 난민이나 노동자들을 용병으로 오인 또는 일방적으로 간주해 처형하는 비인도적 일도 벌어졌다. 서방의 참전 명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전쟁의 명분과 정당성 측면에서 분류하면 카다피 원수 측이 ‘악(惡)’인 건 분명한데 그 반대편에 있는 반군 역시 ‘선(善)’에서 일탈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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