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집트 反정부시위 지지”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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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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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튀니지 혁명’ 평가후 백악관 “국민열망 부응하라”“무바라크 퇴진” 시위 격화… 시민 등 4명 사망-250여명 부상

‘재스민 혁명’의 향취가 아랍권 맹주 이집트까지 흔들고 있다.

이집트 전역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25일 시민 3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지고 250여 명이 다친 데 이어 26일에도 정권퇴진과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주요 도시 곳곳에서 열렸다. 미국 등 국제 사회까지 이집트 반정부 시위에 대해 분명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30년간 굳건하게 계속된 호스니 무바라크 철권통치에도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이날 백악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집트 정부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할 것을 촉구한다”며 “미국은 이집트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이집트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또 “이집트 국민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개혁을 완수해 보다 나은 삶과 번영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이집트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는 전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집트 상황은 안정적”이라며 ‘조심스러운 관망세’를 취했던 데서 크게 바뀐 것이다. 변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6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튀니지 시민 혁명을 평가한 지 몇 시간 만에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튀니지는 국민들의 의지가 독재자의 권력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곳”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집트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처해야 하며 그들이 시위를 벌일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1977년 빵값 폭등에 분노한 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최소 79명이 숨진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라는 게 AFP의 분석이다. 시위대는 ‘경찰의 날’인 25일을 ‘분노의 날’로 지칭하면서 알렉산드리아 2만 명을 비롯해 카이로 수에즈 만수라 탄타 이스마일리아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원한다” “현 정부와 대통령은 불법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가자는 무바라크 대통령과 하비브 엘아들리 내무장관 사진을 불태우기도 했다. 시위 와중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가 접속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져 정부의 시위 확산 차단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도 퍼졌다. 이집트 내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시위금지령을 발표했다. 이집트 보안당국은 시위 참가자 200여 명을 구금했으며 시위 현장에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 정부는 경찰 3만여 명을 동원해 시위대와 맞서고 있지만 이날 타히르 광장에선 시위 군중과 일부 경찰이 빵을 나눠 먹는 모습도 목격돼 군경의 시위 참여로 정권 축출에 성공한 튀니지 시민혁명 양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야당 정치세력과 반정부 단체는 26일에도 이틀째 거리 시위에 나섰다.

공군 장성 출신인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이후 30년 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8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9월 대선에서 6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집트 야당과 국민은 무바라크 정권이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이끄는 야당 정치세력까지 가세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중동에서 손꼽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등 이 지역의 주요 분쟁을 중재해 왔다. 미국도 1980년 아랍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뒤 친미 외교를 유지하는 이집트의 외교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시위가 격화될 경우 미국은 무바라크 체제 유지와 민주화 세력의 요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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