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대출사업이 빈민 울린다” 지구촌 원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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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 ‘그라민’ 부정 의혹··· 인도선 “대출 강권” 여론
“대출금 갚지 말자” 운동도··· “급속 성장이 걸림돌” 지적

‘그라민’이라는 이름의 은행이 전 세계 빈곤층에게 희망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빈민에게 소액을 빌려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세계에 확산시킨 대표적인 금융기관이었다.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에게 2006년 노벨평화상을 안기기도 했다.

그런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이제는 지구촌 곳곳에서 호된 시련에 부닥쳤다. 사업자의 부정거래와 부패 의혹, 비효율 등의 문제가 잇따르면서 거친 비난과 함께 “대출금을 갚지 말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 그라민은행이 탄생한 방글라데시는 물론이고 인도, 니카라과, 파키스탄, 볼리비아 등지에서도 역풍이 거세다.

5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최근 그라민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빈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라민은행은 1990년대 후반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노르웨이에서 지원받은 1억 달러를 계열사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인도에서는 최근 소액 대출자가 급감하면서 이 분야의 투자와 지원도 줄어드는 추세. 일부 마이크로크레디트 회사들이 빈민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대출을 강권한 뒤 이자를 뜯어낸다는 비판이 잇따른 결과다. SKS마이크로파이낸스라는 회사가 지난해 주식을 팔아 무려 95배의 수익을 올린 점도 부정적인 여론을 부추겼다.

신흥국이나 저개발국의 경우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에 대한 정치 공세도 거세다. 사업자가 약자를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로 공격당하는 경우도 많다. 니카라과에서는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2008년 농민들이 “빚을 못 갚겠다”며 벌인 ‘노 페이(no pay)’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니카라과 법원은 최근 주요 마이크로크레디트 회사인 ‘방코 델 엑시토’의 청산을 명령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고 지적한다. 2009년 말까지 이들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대출받은 사람은 9100만 명. 인도에서는 이들 은행의 연간 성장률이 최대 100%나 됐다. 인도 ‘그라민 금융서비스’는 몇 달 전 사업을 확장한다며 600명의 직원을 한꺼번에 신규 채용했다가 대출금이 급감하면서 일손이 남아도는 처지다.

빈민들이 대출금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상당수 대출자는 빌린 돈을 사업 종잣돈으로 투자하는 대신 빚을 갚거나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데 쓰고 있다. 또 소액으로 할 수 있는 영세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수익성이 악화돼 당초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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