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학계-정부 때아닌 ‘가운데 점’ 공방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5일 2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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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계가 ‘과학기술’의 표기법을 둘러싸고 한 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15일 보도했다. 과학과 기술 사이에 가운뎃점을 찍어야 할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과학계는 기술에 종속된 과학을 독립시키기 위해 가운뎃점을 찍은 ‘과학·기술’을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이미 굳어진 용어라며 가운뎃점이 필요 없다고 맞서고 있다.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인식론이 가운뎃점 하나에 담겨있는 셈이다.

문제의 발단은 일본 과학계가 올해 1월부터 ‘과학·기술’이라는 표기로 통일하기로 했으나 정부가 내년도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면서 가운뎃점을 없앤 종전 표기로 돌아간 것이 화근이 됐다.

일본 과학자들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일본학술회의는 가운뎃점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과학과 기술은 대등한 관계임에도 현대사회에서는 과학이 기술에 종속돼 기술을 뒷받침하는 소극적 의미의 과학으로 전락했다는 반감이 깔려 있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가 순수학문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경시풍조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운뎃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산하조직인 종합과학기술회의는 가운뎃점이 없는 ‘과학기술’이 이미 굳어진 용어라고 맞서고 있다. 오랫동안 과학기술이라는 표기를 써온 데다 관련법도 가운뎃점이 없는 표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 과학과 기술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정착됐음에도 이를 굳이 구분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과학계의 점 논쟁을 두고 일각에서는 과학자들의 자존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점 하나라도 찍어 과학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싶을 만큼 과학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도쿠야마고등전문학교의 히라노 치히로 교장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과학 및 기술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표현이었으나 전후에 과학과 기술이 일체화된 개념을 뜻하는 쪽으로 정착됐다”며 “과학기술로 국가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려한 기술계 관료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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