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축서 통상까지… “협상은 女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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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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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는 세상’과 군축, 통상 협상은 이제 여성 손에 달린 듯하다. 올해 미국에서 개최된 군축과 비확산 분야의 주요 협상은 모두 여성의 손으로 이뤄졌다. 3월 타결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의 후속협정,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 5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모두 여성이 주도했다. 이 분야는 과거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다. 워싱턴에서는 군축 분야를 여성이 점령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47개국 정상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3개 지역기구 대표가 모두 모였던 핵안보정상회의를 총괄 지휘했던 사람은 수전 버크 대통령 핵 비확산 특별대표였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6월 버크 특별대표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24시간 내내 핵 없는 세상 구현만 생각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한국이 유치한 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임하는 미국 셰르파(sherpa·사전교섭대표)인 보니 젱킨스 국무부 정책조정관 역시 여성이다.

지난해 말 효력이 끝난 ‘뉴 스타트’ 협상의 미국 수석대표는 로즈 고테묄러 국무부 군축·검증 및 이행담당 차관보.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러시아 전문가이며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고테묄러 차관보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러시아 담당 과장으로 잔뼈가 굵었고 에너지부와 국무부 등에서 군축과 비확산 담당 업무를 계속해왔다.

협상 전면에 이들이 있었다면 워싱턴에서 협상전략을 총지휘했던 책임자 역시 여성인 엘런 타우셔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었다. 13년 동안 캘리포니아를 대표한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하원 군사위원회 소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군축 비확산 분야가 신흥 여인천하라면 미국의 대외무역관계 교섭을 맞고 있는 통상대표부는 30년 이상 여풍(女風)이 거센 곳이다. 특히 한국과의 통상 관련 업무는 여성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는 게 미국과의 통상을 담당했던 당국자들의 회고.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 FTA 의회 비준을 가로막는 자동차 및 쇠고기와 관련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커틀러 대표보는 가장 바쁜 2주일을 보내고 있다. 앞서 USTR 대표를 지냈던 칼라 힐스(1989∼1993년), 샬린 바셰프스키(1997∼2001년), 수전 슈워브(2006∼2009년)도 여성이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과의 통상문제 실무총책인 한국과장 역시 여성이 도맡아 했다. 크리스티나 런드-메리 래티너-에이미 잭슨으로 이어진 여성과장 라인은 협상장에서 깐깐하기로 정평이 났다는 후문. 잭슨 전 과장은 현재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미 FTA 비준의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통상 분야에서 여성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로는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데 치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군축과 통상 분야 모두 협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제로섬’식 승리 독점의 경직된 모습보다는 양쪽이 타협할 수 있는 중간지점을 찾는 데 좀 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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