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유유출 국가재난사태(SONS) 대비 훈련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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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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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3시간만에 현장엔 대책본부
50여개 기관 600여명 ‘한팀처럼 척척’
‘액손 발데스 사고’ 이후 97년부터 3년마다 실시
정유사-현지 NGO도 참여… 자원봉사자 ‘원유접촉’ 불허


24일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 앞바다에서 미국 환경보호청 해안경비대 등 기관의 대원들이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는 사고에 대비해 유류
 확산을 막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유류 및 화학물질 유출로 인한 국가재난사태’ 대비 훈련에는 모두 50여 개의 민관 
기관에서 600여 명이 참여했다. 1989년 3월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액손 발데스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미 정부는 
1997년부터 3년마다 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 해안경비대
24일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 앞바다에서 미국 환경보호청 해안경비대 등 기관의 대원들이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는 사고에 대비해 유류 확산을 막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유류 및 화학물질 유출로 인한 국가재난사태’ 대비 훈련에는 모두 50여 개의 민관 기관에서 600여 명이 참여했다. 1989년 3월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액손 발데스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미 정부는 1997년부터 3년마다 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 해안경비대
“액손 발데스와 같은 대형 원유 유출 사고가 언제 또 발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피해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빈틈없는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24일(현지 시간) 미국 동북부 메인 주 포틀랜드 앞 바다. 살을 에는 듯한 강한 바람과 눈발이 날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10여 척의 배에서 사람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여러 가지 장비를 조립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원유 유출 시 기름띠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차단막을 바닷물 위에 설치했다. 다른 배에서는 유출된 기름을 수거하는 장비를 이용해 바닷물을 빨아들였다. 저 멀리 항구 쪽에는 수거된 원유를 육지에 설치된 창고로 옮기는 바지선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3년마다 실시되는 대규모 원유유출 대비 훈련에 참가한 배들이었다.

○ “같은 실수 반복 않는다”

이날 훈련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로 기록된 유조선 액손 발데스호의 침몰 사고를 계기로 실시한 ‘유류 및 화학물질 유출로 인한 국가재난사태(SONS)’ 대비 훈련이다. 환경보호청(EPA) 해안경비대(Coast Guard) 등 연방정부 유관기관, 주정부, 비정부기구(NGO) 등 모두 50여 개 기관에서 6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이다.

1989년 3월 2억 L의 원유를 싣고 가던 액손 발데스는 미국 알래스카 앞 바다에서 침몰해 약 4000만 L의 원유가 유출됐다. 해안경비대 소속의 환경전문가인 레너드 리치 씨는 “그 사고로 수십만 마리의 바닷새가 죽는 등 해양 생태계가 파괴돼 알래스카는 지금까지도 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당시 미국은 체계적인 원유 유출 사고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피해가 더 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 의회는 1990년 연방정부와 주정부 등이 협력해서 유류 및 화학물질 유출 사태에 대한 체계적인 국가대응계획을 마련하도록 규정한 원유오염법을 통과시켰다. 미 정부는 1994년 국가재난사태(SONS)를 ‘국민 보건과 환경에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돼 연방정부, 주정부, 민간 회사 등의 공동 대응을 요구하는 대규모 원유 또는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정의하고 해안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해안경비대가, 내륙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EPA가 대응체계를 지휘하도록 만들었다. SONS 훈련은 1997년 처음 실시된 뒤 3년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필라델피아, 알래스카, 멕시코 만, 캘리포니아, 미시간 호수 등지에서 진행됐으며 올해가 6회째다. 올해 1월 텍사스 주의 포트아서 시 근해에서 유조선이 예인선과 충돌해 반경 약 3km 지점까지 기름이 퍼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SONS 훈련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


포틀랜드 시내 한 호텔에는 현장을 지휘할 대책본부가 차려졌다. 호텔 내 컨벤션센터는 훈련에 참가하는 각 기관에서 파견 나온 직원 600여 명이 바쁘게 움직이며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들은 훈련계획 수립, 보건, 환경보호, 현장안전, 장비조달, 자금조달 등 10여 개 팀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짐 맥피어슨 해안경비대 뉴잉글랜드지부장은 “SONS 훈련의 핵심은 서로 다른 기관 직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체계를 세우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각자 다른 지역,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 담당자들을 한곳에 모아 대책본부를 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훈련은 메인 주 포틀랜드 앞바다에서 43만 배럴(약 6832만 L)의 원유를 싣고 가던 셸 소유 유조선과 자동차운반선이 충돌해 6만9000배럴(약 1096만 L)의 원유가 유출되는 사고를 가정해 실시됐다. 이처럼 규모가 큰 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주가 피해를 보는 만큼 사고 처리에 동원되는 인력이나 장비도 많고 보고체계도 복잡하기 마련이다.

○ 민간 회사와 NGO도 적극 참여

훈련에는 정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정유회사 등 민간 회사와 현지 사정에 밝은 NGO도 매번 참여한다. 미국 정부는 대형 정유회사들을 훈련에 번갈아 참여시키고 있으며 이날 훈련에는 셸이 파트너 역할을 맡았다. 셸의 대표인 브루스 존스 씨는 “미국은 법적으로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유회사가 사고 처리에 적극 나서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훈련에 참여한 포틀랜드 지역의 환경보호단체인 ‘캐스코베이의 친구들’의 조지프 패인 씨는 “민간단체들은 자원 봉사자들과 정부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의 사고처리 과정에서 생태계를 해치는 일은 없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점은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유출된 원유와 접촉하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패인 씨는 “원유는 화학성분이 강한 위험물질이라 신체와 접촉할 경우 건강상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해안에 밀려온 원유 슬러지를 닦아낸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포틀랜드=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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