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日기상청 ‘과장 경보’에도 신뢰받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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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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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규모 8.8의 강진이 칠레 중부지역을 덮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지구 반대편의 일본은 거의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대지진이 몰고 올 일파만파의 지진해일(쓰나미) 공포로 좌불안석이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정규방송을 모두 중단한 채 온종일 재난방송을 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일본 국민들이 그토록 바랐던 마지막 금메달이 걸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팀 추월 경기도 뒷전이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쓰나미 상황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9층에서 일하는 기자도 당장 자리를 떠야 하지 않을까 불안했을 정도다.

칠레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7일 밤까지만 해도 일본 기상청은 쓰나미가 경보발령 기준인 1m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8일 오전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총리관저에 대책실을 설치하고 총력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삽시간에 66만여 가구, 156만 명이 대피했다. 동부해안 지역의 철도운행과 도로통행도 중단됐다.

그러나 일본 기상청의 쓰나미 경보는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최대 3m의 대형 쓰나미를 우려했지만 일본 동부 연안에 도달한 쓰나미는 수십 cm의 파도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쓰나미가 1.2m였으니 기상청이 과장경보로 공포를 조성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휴일 온종일 가슴을 졸이며 TV를 지켜봐야 했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기상청의 오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쓰나미 예측이 빗나간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한계이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온정적 목소리마저 나온다. 일본 언론들도 빗나간 예보의 책임을 탓하기보다 “쓰나미의 위험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기상청에 굳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대한 이 같은 뿌리 깊은 신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확률 90%에 육박하는 일본 일기예보의 정확성이다. 한 해 1조2000억 원의 막대한 투자와 5800여 명에 이르는 풍부한 전문 인력이 생산해내는 정보의 질이다. 일본은 1977년 기상전문위성인 히마와리 1호 발사 이후 2006년까지 총 17개의 기상 및 지구관측 위성을 쐈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걸 감안하면 일본 기상청의 위력은 필연이다. 기상위성 하나 없이 2000억 원의 예산을 가지고 1200여 명의 인력이 고군분투하는 한국 기상청의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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