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집도하는 수술실… 그곳엔 국경도 인종도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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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본보 의사기자, 포르토프랭스(아이티) 현장 진료
세브란스병원-한국기아대책-동아일보 의료봉사단

병원 곳곳 파리-모기떼 왱왱
전신마취 시설 크게 모자라
임신부 무릎절단 수술 도와

24일 오후 1시(현지 시간) 코뮈노테 병원에서 본격적인 진료를 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기아대책본부, 동아일보 진료단. 본보 이진한 기자가 청진기를 대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세브란스병원-한국기아대책 의료봉사단
24일 오후 1시(현지 시간) 코뮈노테 병원에서 본격적인 진료를 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기아대책본부, 동아일보 진료단. 본보 이진한 기자가 청진기를 대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세브란스병원-한국기아대책 의료봉사단
24일 오전(현지 시간) 세브란스병원-한국기아대책-동아일보 의료봉사단은 포르토프랭스 코뮈노테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 병원은 총 300병상 규모로, 아이티에서는 꽤 큰 병원으로 통한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등에서 80여 명의 의료진이 와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큰 수술은 여러 나라 의료진이 일손을 보태고 있다.

큰 수술이 없을 때는 병원 전체를 5개 구역(zone)으로 나눠 나라별로 진료를 한다. 한국 의료봉사단은 1층에 있는 3구역을 맡았다. 한국 의료봉사단은 우선 환자를 진료하는 파트와 약품을 조제하는 파트로 역할을 나눴다. 김원옥 세브란스병원 마취과 교수와 김경아 노지영 간호사는 다른 나라의 구호팀과 함께 수술을 하기로 했고, 기자는 내과 진료 파트에서 구호 활동을 벌였다.

내과 파트에는 응급수술 후 2차 감염이 심해진 환자가 많았다. 아이티의 모든 병원에는 환자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입원실에 들어갈 수 있는 환자는 대부분 중증 환자다. 그러나 입원실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수술을 받은 후 바로 병실을 내줘야 한다. 이 때문에 수술 후 제대로 처치를 받지 못해 2차 감염에 걸린 환자가 많았다.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의 환자가 증상이 상당히 악화돼 있었다. 손과 발이 절단됐거나 골절이 생긴 부위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도 흔했다.

35세 된 클레스모 기탕 씨는 발목 골절 부위에 핀을 고정시키기는 했지만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발 전체로 감염이 확산되었다. 발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변변한 약품이 없어 베타딘으로 소독하는 선에서 치료를 끝내야 했다. 38세 된 미젤레 아리즈 씨는 임신 6개월이지만 워낙 상처가 커서 왼쪽 무릎을 절단해야 했다. 붕대를 풀자 고름이 흥건했다. 의료진은 재수술을 결정했다.

이 병원에 있는 수술실 6곳 가운데 2곳은 미국에서 온 의료팀이 쓰고, 나머지 4곳을 다른 나라 의료팀이 쓰고 있다. 수술실 4곳 가운데 2곳은 모기와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굳이 수술실 전용 신발을 신을 필요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수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술실 환경은 열악했다. 다행히 2곳은 전신마취가 가능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 중 한 곳에서 문은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25일 아리즈 씨의 무릎 재수술을 하기로 했다. 기자도 수술팀에 합류해 어시스트를 하기로 했다.

오후 4시경 코뮈노테 병원에서 각국의 의사와 간호사 50여 명이 모여 전체 회의를 했다. 회의에서는 수술 후 재감염 문제가 제기됐다. 데이비드 밀러 수술실장은 “각국의 팀이 머무는 시간을 조사해서 수술하는 팀이 환자들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회의까지 끝내자 한국 의료팀은 모두 녹초가 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1분도 쉴 틈이 없는 하루였다. 환자가 너무 많아 미처 돌보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는 비타민제나 알코올 소독제를 주는 것만으로 처치를 끝내야 했다. 그러나 하루 3회, 식사를 마친 후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끼니를 밥 먹듯이 거르는 상황에서 그 약이 도움이 됐을까. 안타까운 밤이다.

이진한 의사·기자 likeday@donga.com
아이티 “강진 희생자 35만명”


아이티 정부는 12일 발생한 강진 희생자가 총 3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25일 밝혔다. 아이티의 마리로랑 조슬랭 라세그 문화공보부 장관은 “현재까지 수습한 시신은 15만 구가량이며, 아직까지 매몰돼 있는 시신도 20만 구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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