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식민지들 ‘유물 독립전쟁’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21일 20시 23분


코멘트

그리스 등 英-佛에 반환요구… “문화교류 끊겠다” 강공
이집트는 이달초 프랑스서 파라오시대 유물 돌려받아

'루브르 대첩(Louvre Victory)!'

이집트가 이달 초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3200년 전 파라오 시대 무덤의 프레스코 벽화 조각 5점을 돌려받기로 한 것을 두고 이집트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유럽 제국주의 시대와 이후 과거 식민지의 내부 혼란기를 거치며 많은 유물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으로 약탈되거나 밀반출 됐다. 제국주의가 종말을 고한 지 오래지만 불법적 유물 거래는 여전히 은밀하게 이뤄진다. 식민지였던 나라는 구(舊)제국주의 국가에 유물 반환을 요구해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 와중에 루브르 대첩이 벌어진 것이다.

승리의 중심에는 이집트 고(古)유물 최고위원회 자히 하와스 위원장이 있다. 2002년 취임 후 '유물반환 정책'을 펼친 하와스 위원장은 루브르박물관 측에 1980년대 초 이집트가 도둑맞은 유물 5점을 돌려주지 않으면 고고학 관련 문화교류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프랑스는 굴복했다. 과거 식민지 국가와 구(舊)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유물 소유권 전쟁'은 주로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배후에서 조용하게 치러졌지만 특기할 유물 반환이 이뤄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와스 위원장은 '조용한 외교' 대신 채찍을 휘둘러 열매를 취한 셈이다.

루브르 대첩 이후 과거 식민지 국가들은 현재 자기네 유물을 갖고 있는 옛 제국에 대한 태도가 강경해졌다. 이집트는 기세를 몰아 영국 대영박물관에 '로제타석'을, 독일 '신박물관'에 3300년 된 이집트 왕 아크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 흉상'을 반환하라고 거듭 요구하고 나섰다. 두 박물관 측은 각각 18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집트에서 발굴된 두 유물을 정당하게 획득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란은 최근 기원전 539~530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3㎝의 '고레스 원통 비문(Cyrus Cylinder)'을 자기네에 빌려주지 않으면 대영박물관과의 모든 협력관계를 끊겠다며 두 달의 시한을 통고했다.

그리스도 19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공사 엘긴 경(卿)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가 대영박물관에 기증한 조각 및 부조(浮彫) 더미인 '엘긴 마블(Elgin Marbles)'을 돌려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는 '돌려줘도 제대로 보관할 공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못 준다'는 영국 측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올해 6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연건평 2만㎡(약 6350평)의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까지 세웠다. 나이지리아도 대영박물관에 16세기 베닌 왕국의 청동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달 초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이 구 소련 점령기 이후 내전을 겪던 1990년대 초 도난당한 유물 2000여 점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아 전시한 것도 하나의 쾌거였다.

유물의 소유권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가 유물을 소유하는가(Who Owns Antiquity?·2008년)'의 저자 미국 고고사학자 제임스 쿠노 시카고예술재단 이사장은 "유물은 현재 있는 곳에 속해 있다"며 "만약 옮겨진다면 세계 문화유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과거 식민지 국가가 유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 정치에 필요한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유물 반환을 꾀한다"는 지적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고고학 관련 법률학자 콰미 오포쿠 박사는 20일 웹사이트 '아프리카 넷'을 통해 "서방 국가들은 근거가 희박한 논리 뒤에 숨지 말고 반환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유네스코의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은 1970년대 이후 거래된 것만 해당한다. 그 이전 시대 약탈 유물에 대한 강제 반환 규정은 없다. 올해 '약탈: 그 역사의 진실'이라는 책을 펴낸 미국 언론인 수전 왁스먼은 "서양 박물관은 약탈의 역사를 밝히고 잘못을 시인한 뒤, 유물의 출처 국가들과 유물을 공동관리 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