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쓴소리’ 바이든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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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참모들 꺼리는 정책비판 총대메
오바마와 ‘당근-채찍’ 역할분담 찰떡궁합

지난달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외교안보 참모들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함께한 회의 시간. “잠시 한 가지 짚고 넘어가 볼까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사진)이 토론 도중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예산 차이가 30 대 1에 달한다는 수치를 바탕으로 편중 문제를 제기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모들은 결국 바이든 부통령의 지적에 따라 전략을 일부 수정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백악관 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쓴소리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정책에서부터 건강보험 개혁 같은 국내 문제까지 대통령의 측근들이 껄끄러워하는 비판과 지적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연초엔 “신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패할 확률이 30%”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는가 하면 최근 아프간 증파 문제를 놓고도 다수와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무뚝뚝하게 내뱉는 듯한 그의 화법은 초기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종종 ‘뒷말’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발언에 담긴 진지한 메시지와 끈질긴 문제제기는 점차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바꾸기 시작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는 “이제 바이든 부통령의 지적은 중요 현안에 대한 판단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행정부 고위인사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호흡이 ‘듀엣’처럼 잘 맞는다고 전했다. 회의 시간에 바이든 부통령이 다양한 측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을 통렬히 지적할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은 등을 살짝 뒤로 기댄 채 묵묵히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스맨’에 둘러싸이기 쉬운 대통령이 “백악관 안에서는 라이벌 팀이 필요하다”며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한 적극적인 경청 의지를 보인 덕분이기도 하다. 부통령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론 클레인 부통령 비서실장은 “바이든 부통령의 입을 이용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전했다.

대외적으로도 두 사람은 ‘당근’과 ‘채찍’의 역할을 나눠 맡고 있다.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우호적인 새 관계 설정을 원한다”고 천명하는 사이에 바이든 부통령이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러시아의 인권 상황과 영토 확장의 야심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경선 초기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햄버거를 먹는 사진을 공개하며 친밀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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