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남미 첫 올림픽” 환호… 시카고 “오바마 믿었는데” 침통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2016 하계올림픽 유치경쟁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축구황제 펠레, 주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예위원장 등이 총출동했다. 3일 새벽(한국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IOC 제121차 총회장에서 승부가 갈렸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입에서 “리우데자네이루”가 터져 나오자 표정은 엇갈렸다. 룰라 대통령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날”이라며 눈물을 흘렸고, 미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현지까지 날아가 총력전을 펼친 오바마 대통령에겐 ‘굴욕의 날’이었다. 》

브라질 룰라 ‘영광의 날’

“경제 탄탄한 개도국 맏형”

美-日2배수준 투자 제시

2014 월드컵 이은 ‘삼바風’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리우데자네이루(리우)로 결정되자 브라질 국민들은 열광적인 삼바춤 속에 환호의 도가니에 빠졌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에 모여 있던 시민 10만여 명은 해변을 내려다보며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코르코바두 산 정상의 거대 예수상을 바라보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리우는 IOC 출범 122년 만에 처음으로 남미에서 올림픽을 여는 도시가 됐다. 브라질은 2007년 미주올림픽 팬아메리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데 이어 2014년 월드컵, 2016년 하계올림픽까지 열게 돼 ‘세계 스포츠 메카’로 떠올랐다.

리우는 2년 전 유치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남미 경제의 맹주로 떠오른 브라질의 경제력과 룰라 대통령의 높은 국제적 위상이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역전극을 펼쳤다는 평가가 현지 언론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번 총회 연설을 경제로 시작했다. “2분기에 이미 침체를 벗어났고 올해 1% 이상 성장할 것이며 지난 몇 년간 3000만 명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면서 “(나는) 주요 20개국(G20) 일원으로 개발도상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실제 브라질 경제는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견고하게 성장했다. 3년 전 740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현재 사상 최고치인 2230억 달러로 늘어났다. 브라질 증시 보베스파지수도 지난해 41% 급락했다가 올 들어 63%까지 반등했다. 브라질 통화 헤알화도 달러 대비 올 들어서만 29% 상승할 정도로 초강세다. 브라질의 내년 성장률은 5%로 예상된다.

브라질은 막대한 투자 발표로 8월 독일 베를린 IOC 집행위원회 분위기를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미국, 일본이 제시한 것의 2배에 이르는 2억1000만 달러로 IOC와 올림픽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같은 경제력을 무기로 룰라 대통령은 “이제 남미가 기회를 가질 때가 되었으며 IOC는 올림픽이 선진국에서만 열리는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이미 한 차례씩 올림픽을 치른 스페인과 일본, 이미 4차례나 올림픽을 연 미국과의 차별화에 집중해 성공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미국 오바마 ‘굴욕의 날’

총력전에도 1차투표 탈락

“개인인기 과신 판단착오”

여론 뭇매에 리더십 상처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경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시카고와 미국은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탈락 발표 직후 시카고 도심 건물들은 올림픽 관련 깃발과 배너들을 즉시 철거했다.

특히 시카고 출신으로 막판 올림픽 유치를 위해 최전방에서 직접 외교전을 벌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적지 않은 정치적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탈락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뜻을 밝혔다”며 “하지만 시카고를 위해 열심히 뛴 것에 후회가 없으며 미국에 관해 얘기할 일이 있으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는 일을 결코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이번 패배에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개인 인기가 (올림픽 유치전에서도) 통하리라 과신한 것”이라며 “다행스러운 것은 핵 미사일보다는 스포츠 이벤트와의 싸움에서 교훈을 얻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독트린인 ‘압도적 무력’을 사용해 올림픽을 유치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왜 실패했는가’를 둘러싼 분석도 분분하다. 우선 오바마 대통령의 판단착오가 크다는 것이다. 존 호버먼 텍사스대 교수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대선 이후 영리하지 못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공영라디오방송(NPR)도 “한마디로 무모한 베팅이었다”고 지적한 뒤 건강보험 개혁, 이민법 처리 등 산적한 국내 현안 해결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썼다.

일부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내부 정치의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미국올림픽위원회(USOC)는 TV 중계권 문제 등을 놓고 IOC와 대립했고, 최근에는 IOC와 별도로 올림픽방송국 설립을 추진해 IOC 위원들의 분노를 샀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