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한 회사서 24번째 자살… ‘노동자 천국’에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일 03시 00분



프랑스텔레콤 19개월새, 다른회사도 자살 유행병
민영화 이후 고용환경 급변,적응못한 직원들 극단 선택


최근 프랑스 동남부 안시의 고속도로 육교 밑에서 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사망자는 프랑스텔레콤에서 근무해온 장폴 루아네 씨(51). 그는 8세, 12세의 두 자녀와 부인에게 ‘열악해진 근무조건을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육교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자살은 지난해 2월 이후 이 회사에서만 24번째. 올해 여름부터 따져도 벌써 8번째다. 이처럼 잇따른 근로자의 자살과 치솟는 자살률이 프랑스 노동계를 뒤흔들고 있다. 1일 뉴욕타임스 및 인디펜던트 등의 유럽 언론은 그 현황과 원인, 해법 등에 대한 분석을 쏟아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프랑스는 매년 남성인구 10만 명당 26.4명이 자살해 서구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특히 세계화 추세 속에 증가해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지난해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고강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늘어나는 추세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자동차회사 르노의 기술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기업에서도 회의 도중 할복자살을 시도하거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주 35시간 근로제와 질 높은 복지혜택에 익숙해진 프랑스 노동자들의 ‘배부른 불만’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이 오히려 자살률을 더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의 마이클 마르셰 씨는 “근로자들이 바뀌는 근무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국민 스포츠가 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텔레콤의 경우 2004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국영 통신회사로서 평생고용과 안정적인 근무조건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회사다. 하지만 민영화 작업이 시작된 이후 5년간 비정규직 고용을 크게 늘리면서 근무 환경이 급변했다. 절반 가까운 인력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부서 혹은 근무지를 이동했다. 사무직에서 갑자기 콜센터 직원이나 현장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 40, 50대 직원이 속출했다.
연쇄자살이 발생한 초기만 해도 “유행처럼 단기적으로 번지는 자살”이라고 치부하던 회사 측은 뒤늦게 재발방지책을 내놓으며 시위에 나선 직원들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 회사 노조의 파트리스 디오셰 씨는 “23번째 자살이 발생한 후 회사가 처우 개선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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