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 60주년]<중>높아진 국제위상, 커진 목소리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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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교체되는 마오쩌둥 초상화 10월 1일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27일 오후 10시. 베이징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교체되고 있다. 가로 4.6m, 세로 6m, 무게 1.5t의 이 초상화는 매년 이맘때 교체된다. 사진 제공 중국청년보
매년 교체되는 마오쩌둥 초상화 10월 1일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27일 오후 10시. 베이징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교체되고 있다. 가로 4.6m, 세로 6m, 무게 1.5t의 이 초상화는 매년 이맘때 교체된다. 사진 제공 중국청년보
中이 입을 열면… 오바마도 차베스도 귀를 세운다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최근 미국 방문은 화려했다.

후 주석은 4박 5일의 짧은 일정에서도 유엔총회 등 4차례 주요 회의에서 연설했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등 주요 8개국 정상과 개별 회담을 했다.

양제츠(楊潔지) 중국 외교부장은 26일 “국가원수가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회의와 정상회담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방문에 앞서 “할 말은 하겠다”고 한 후 주석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세계 최대 수출국의 수반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경고했다.

또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큰 영향력을 가진 개발도상국의 대변자로 최빈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와 관심을 촉구했다. 중국의 목소리에는 무게가 실렸고 세계인은 경청했다.》

후진타오 “할말은 하겠다” 美보호무역주의 경고
경제-군사력 쑥… 지구촌 경영 초강대국 반열에

60년 전에는 달랐다. 1949년 10월 1일 신(新)중국이 세워졌을 때 중국은 역사상 가장 볼품없는 처지였다. 건국을 선포하는 순간에도 내전의 총소리는 이어졌다. 100년에 걸친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국토는 폐허였다. 5억4200만 명의 인민은 빈곤에 허덕였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살인적이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은 “곤경에는 극복 방법이 있고 희망이 있다(有困難, 有辦法, 有希望)”고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중국은 60년 동안 많은 곤경을 극복하고 세계의 주역으로 우뚝 일어섰다.

○ 주변에서 핵심으로

신중국은 건국 다음 날 공산주의 ‘맏형’ 소련과 수교관계를 맺었다. 마오 주석은 첫 방문국으로 소련을 택했지만 이 방문에서 약간의 차관을 얻는 데 그쳤다. 6·25전쟁과 냉전 속에 중국은 고독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은 1960년대 3개월 동안 아프리카 10개국을 도는 등 비동맹국가에서 활로를 찾았다.

1971년 10월 25일 사회주의 중국의 유엔 가입이 승인되고 대만은 퇴출됐다. 1950년 처음 유엔 가입을 시도한 지 21년 동안 중국은 무려 20여 차례나 유엔 가입에 도전했다. 당시 마오 주석은 “오랫동안 유엔에 못 들어온 것은 미국과 일본 때문이고 이제 들어온 것은 아프리카 형제들 덕분”이라고 감개무량해했다.

이후 1972년 중-일 수교, 1979년 중-미 수교로 중국은 ‘죽의 장막’을 걷어 내렸다. 특히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부쩍 성장한 경제력과 시장을 근거로 중국의 입김은 나날이 커져 간다.

또 대규모 대외원조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중국은 개도국의 대변자로 올해 4월 제2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최근 제3차 G20 정상회의에서 최빈국 지원에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의 수교국은 건국 직후 10개국에서 현재 171개국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 말은 대만 수교국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유엔에서의 역할도 커졌다. 현재 중국은 평화유지군 2100명을 12개국에 파견했다. 타임지는 이 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고, 중국의 유엔 공헌도는 강대국 가운데 가장 크다고 최신호에서 평가했다.

○ 베이징 컨센서스 대 워싱턴 컨센서스

특히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 말 이후 중국의 위상 변화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올해 3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는 세계경제 회생에 주요 2개국(미국, 중국)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G2’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본래의 의도를 훌쩍 뛰어넘어 쓰이고 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반열에 중국이 미래의 초강대국 자격으로 거론되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또 몇 년 전 등장한 신조어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에서 보듯 이제 중국이 미국과 함께 지구촌을 경영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뜻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제2차 G20 정상회의에서 “낡은 ‘워싱턴 컨센서스’는 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식 경제발전 모델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면서 베이징 컨센서스의 주가를 상한가로 올린 한마디였다. 현재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불가리아 수단 등 좌파 또는 독재 국가들은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눈길을 쏟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최근 “서구 발전 모형을 기계적, 교과서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국가 실정에 맞게 스스로 길을 개척한 것이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 아시아 최강의 군사력을 향해

중국의 군사력은 현재 세계 5위 안팎으로 평가받는다. 건국 초기 일본군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무장했던 중국 인민해방군은 현재 병력 230만 명의 세계 최대 상비군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바짝 쫓는 수준이다.

올해 스웨덴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849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해 군비 지출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군비 증강은 최근 10년 사이 2배(194%) 증가해 증가 속도가 세계 군사대국 10강 가운데 가장 빠르다. 군비 지출 1위 미국(6073억 달러)의 14% 수준이지만 한국(242억 달러·11위)의 3.5배에 이른다.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대 우주강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지난해 3번째 유인우주선을 발사했다. 또 세계 3번째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다. 현재 화성탐사 계획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2020년까지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스스로도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최근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주에 군사위성이 있고 하늘에 젠(殲)-10 전투기, 육지에 최신 미사일과 탱크, 바다에 신예 구축함이 있다”고 밝혔다. 량 부장은 이런 첨단 무기들은 서방의 최신 무기와 대등하거나 이에 매우 근접한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북핵-인권-환경, 대국 걸맞는 자세 보여야”▼
국제사회 “석유 위해 대학살도 못본척… 책임감 부족”

중국의 굴기(굴起·급부상)에 따른 세계인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대국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중국 외교가 대국으로서 성숙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올해 4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 미국 여기자들의 북한 억류 등 일련의 사건으로 한반도 정세가 소용돌이 칠 때 북한은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안전을 담보로 게임을 시작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이런 교착 국면을 풀 수 있는 실질적 제재 수단을 가진 나라였지만 중국은 사실상 수수방관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결연히 반대한다”라는 강도 높은 비난 성명을 발표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중국이 지금까지 실질적 대북제재 조치를 취했다는 움직임은 없다. 고작 북한이 밀반입하려 했던 3600여만 원어치의 전략 물질 바나듐(vanadium) 70kg을 압수한 게 전부다.

이 때문에 최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을 두고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평가는 싸늘하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얻는 행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제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등으로 조성된 해결 무드에 중국이 부랴부랴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한미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터라 자칫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초조감도 보인다. 한 소식통은 “중국은 대국으로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을 벌이고, 이를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중국 정부의 자세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비판은 매우 거세다. 중국은 상대국이 부패하든, 폭압정권이든 상관없이 사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불간섭 외교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상대국 정권 유지에 도움을 주지만 인류의 행복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한 예로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대학살(2003년 수단 정부가 아랍계 민병대를 투입해 40만 명의 목숨을 앗은 사건)을 일으켰는데도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단은 중국의 주요 석유 수입국 중 하나다. 서방 세계는 중국이 ‘피로 물든 석유’를 사고 있다고 중국을 비판하고 있다.

또 선진국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노력하는 사이 중국의 배출량은 매년 크게 늘었다. 2008년부터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이산화탄소 배출 국가가 됐다. 중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계속 늘리는 한 다른 나라의 배출 감소 노력은 그 의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은 최근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저하게’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이 발표가 어떤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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