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개발전문가 “일감 터져 위기느낄 틈 없죠”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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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1년 세계 중산층 리포트]<1>명암 갈린 삶
의류가게 운영 中 여사장
“새로 산 집 개발바람에 값 껑충”
브라질 농산물 수출기업 매니저
“신흥국 시장 집중… 수출 2배로”

인도 뉴델리에 사는 마나사 모한티 씨(36). 그가 건넨 명함엔 ‘사회개발 전문가(Social Development Specialist)’라는 다소 생소한 직함이 적혀 있었다. 설명을 해달라고 하자 모한티 씨는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인도 각 지역의 공사 현장에서 직접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모한티 씨는 인도 정부가 벌이는 도로와 철도 건설 등 각종 인프라 개발사업에 참가해 이들 사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지역민의 이주 및 보상 문제 등을 컨설팅하고 돈을 받는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경제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대대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에 나섰고, 당연히 모한티 씨의 일거리도 늘어났다.

요즘 그를 찾는 곳은 인도 정부뿐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등 인접국 정부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들어온다. 모한티 씨는 올 5, 6월에도 400km 길이의 도로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땐 큰딸의 방학 기간이었는데, 일 때문에 가족과 같이 시간을 못 보낸 게 못내 아쉽다. 그는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철도 공항 지하철 댐 등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라며 “일이 워낙 많이 쏟아져 개인적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는 느낄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2007년 소득은 200만 루피(약 5100만 원). 경제위기가 터진 2008년에는 오히려 수입이 두 배로 늘었고 올해는 작년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 것 같다. 인도의 괜찮은 로컬 대기업 사원의 연봉이 1000만 원도 안 되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액수다.

모한티 씨의 얘기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거대 신흥국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도 수출업체 및 금융회사 종사자나 외국계 회사 취업을 준비하던 젊은 학생들은 위기의 파고를 비켜가지 못했다. 그러나 삶과 직업이 해외 경제와 거리가 있는 평범한 사람 중 상당수는 자국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막강한 내수시장 덕분에 모한티 씨처럼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 “경제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

“미국 덴버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는 사촌동생이 경기가 너무 안 좋아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겠다며 죽도록 일만 했는데…. 미국 경기가 정말 그렇게 안 좋나요? 잘 느껴지지가 않아요.”

쑨쉬안(孫璇·28·여) 씨는 중국 우한(武漢) 시의 쇼핑센터와 상점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인 장한루(江漢路) 지역에서 소규모 여성용 의류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쑨 씨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약 1년 전 경제위기가 터졌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로 인해 본 피해는 거의 없다.

중국의 경우 외국계 금융회사와 수출기업이 몰려있는 연안지역의 경제는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쑨 씨의 사례처럼 깊숙한 내륙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글로벌 경제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중앙정부의 내륙 지역 육성 정책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쑨 씨의 삶도 지난 1년간 좋아진 면이 더 많다. 그가 2년 전 우한 시내에 장만한 아파트 값은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오를 만큼 올랐다. 쑨 씨는 광고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5년 전 결혼해 두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쑨 씨는 “큰 건물과 도로가 계속 생기고 있고 지하철 공사도 진행되고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게 편리해지는 것 같다”며 “내가 산 아파트도 지역개발이 되면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산이 증가하기는 인도의 모한티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음 달에는 전셋집을 떠나 최근 마련한 뉴델리의 새집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새로 산 집의 가격은 520만 루피(약 1억3250만 원). 모한티 씨는 “내가 받는 일감은 대부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나와서 소득에 별 타격이 없다”며 “경제위기로 인도의 부동산 시세가 30%까지 하락했을 때 서둘러 새집을 계약했다”고 소개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

글로벌 경제의 ‘온도 차(差)’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과 일자리 감소의 공포에 시달린 반면 거대 신흥국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목표치인 8%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인도도 2008∼2009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6.7%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브라질은 작년 말의 침체를 극복하고 올 2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브라질의 나탄 카타시 씨(56)는 농산물 수출회사인 심코르사(社)의 매니저다. 은행과 다국적 대기업들이 몰려 있는 상파울루 시내 이타임비비 지역의 본사에서 카타시 씨는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해외 바이어들과 화상미팅을 갖는다. 그를 기다리는 고객은 인도 중국 등 다양한 신흥국가의 바이어들. 브라질에서 설탕과 대두를 수입하기 위해서다. 카타시 씨는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으로 브라질 농산물 수출은 경제위기 전보다 오히려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심코르의 설탕, 대두 수출 실적은 이미 지난해 1년 치를 뛰어넘었다. 특히 지난해 22만 t을 수출했던 설탕은 상반기에만 45만 t을 수출했다. 경제위기로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줄었지만 중국과 인도, 남미 등 신흥시장의 농산물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 우한 시에서 온라인 게임회사를 운영 중인 왕위진(王昱錦·27) 씨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사람이다. 그의 회사는 작년에 30% 이상 매출이 늘었다. 이에 따라 왕 씨는 작년까지 사무실로 쓰던 창고 건물을 버리고 올해 초 우한 시내 중심가인 신세계백화점 인근의 현대식 대형빌딩으로 회사를 옮겼다.

왕 씨는 “인터넷 보급이 더뎠던 내륙 지방에서도 경제성장으로 인터넷 이용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중국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5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고 내 사업도 그에 맞춰 성장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13개국 ‘대표 중산층’ 100명 만나
경제위기 1년의 삶과 희망 인터뷰

■ 어떻게 취재했나

동아일보의 ‘글로벌 경제위기 1주년 특별취재팀’ 기자 10명은 7월 말부터 약 한 달 동안 전 세계 13개국에서 중산층 100명을 만나 경제위기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과 위기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인생 설계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취재팀은 경제위기의 진원지로 자산 감소 및 일자리 불안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경기침체 속에서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서유럽과 일본,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휘말려 국가부도 상태에까지 내몰린 헝가리와 아이슬란드를 찾았다. 막강한 내수시장과 풍부한 자원 덕택에 이번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중국 인도 브라질 중동의 현장도 취재했다.

국가별 인터뷰 대상자는 △미국 미시간 주와 뉴욕 9명 △영국 런던 9명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6명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8명 △독일 프랑크푸르트 6명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명 △일본 도쿄 4명 △폴란드 바르샤바 6명 △헝가리 부다페스트 5명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아부다비 10명 △중국 상하이와 우한 12명 △인도 뉴델리 8명 △브라질 상파울루 15명 등이다.

인터뷰는 1명에 평균 2∼3시간 걸렸으며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당사자의 양해를 얻어 현지 가정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구체적인 소득과 자산의 증감 상황은 물론 자국 정부를 향한 불만, 개인적인 정치 성향 같은 민감한 부분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인터뷰 대상자는 경제위기 이후 각 나라의 변화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을 주로 선정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동차회사에서 해고된 실직자,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금융업계 종사자,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은 내수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을 섭외했다. 아울러 표본의 대표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생과 주부, 이미 은퇴한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두루 만났다.

특별취재팀

△ 팀장=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 미국 미시간·뉴욕=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일본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중국 상하이·우한=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인도 뉴델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영국 런던·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정재윤 기자jaeyuna@donga.com

△ 독일 프랑크푸르트·네덜란드 암스테르담=정양환 기자ray@donga.com

△ 스페인 마드리드·바르셀로나=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 헝가리 부다페스트·폴란드 바르샤바=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아부다비=정임수 기자imsoo@donga.com

△ 브라질 상파울루=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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