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서 활동한 자료 발굴해 제대로 조명을”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법정에서 의연했던 강우규 의사의 모습을 보도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오른쪽부터 강 의사 재판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0년 4월 15, 16, 29일자.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법정에서 의연했던 강우규 의사의 모습을 보도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오른쪽부터 강 의사 재판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0년 4월 15, 16, 29일자.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강우규 의사 의거 90주년 학술세미나에서는 강 의사의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활동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강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 의거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자료 부족으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한 자료를 발굴해 기본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를 비롯해 학계가 앞으로 가장 중점을 둬야 하는 일은 기초 자료 발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교수는 “안 의사도 연구 초기에는 하얼빈 의거에 관한 자료만 있었지만 최근에는 독립운동 초기 자료가 발굴되면서 조명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며 “강 의사는 제1권력자인 조선 총독의 폭살을 노렸던 인물인 만큼 일본 측에 더 많은 자료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인섭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은 이날 축사에서 강우규 의사 동상과 기념관 건립 계획을 밝혔다. 강 회장은 이날 “강 의사 동상 문제를 최근 서울시와 협의해 사실상 매듭을 지었다”며 “내년 11월경에는 서울역에 강 의사의 동상이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아울러 강 의사 기념관을 서울에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강 의사는 출생지가 평안남도 덕천군인데도 민족 계몽을 위한 교육과 독립운동도 만주와 러시아에서 했기 때문에 관련 사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자료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강 의사의 직계 후손이 사실상 끊겼기 때문이다. 유일한 혈손이던 손녀 강영재 여사가 1985년 세상을 떠난 뒤 남아 있는 직계 후손은 없다고 강 회장은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자료 발굴과 기념관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초 기념사업회 운영을 맡은 강 회장은 9명의 이사를 18명으로 늘렸다.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이원영 전 스페인 대사, 강신섭 변호사 등이 강 의사를 기리는 사업에 흔쾌히 참여했다. 기념사업회는 9월 2일 의거 90주년을 기념해 서울역에서 강우규 의사 폭탄 투척 의거를 재현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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