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비 영웅 돌아왔다” 리비아 환호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당당하게 귀국20일 스코틀랜드에서 석방된 ‘로커비 사건’의 주범 리비아인 압델 바세트 알리 알 메그라히(비행기 트랩 앞줄 오른쪽)가 이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하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천 명의 주민이 국기를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하고 있다. 트리폴리=로이터 연합뉴스
당당하게 귀국
20일 스코틀랜드에서 석방된 ‘로커비 사건’의 주범 리비아인 압델 바세트 알리 알 메그라히(비행기 트랩 앞줄 오른쪽)가 이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하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천 명의 주민이 국기를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하고 있다. 트리폴리=로이터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송환 결정에 “英 석유이권 노린것” 분석
오바마 “석방 결정은 잘못… 가택연금 조치 이뤄져야”

“리비아가 겹경사를 맞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67)의 집권 40주년 기념일을 11일 앞둔 20일 ‘로커비 사건’의 주범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수감돼온 리비아인 압델 바세트 알리 알 메그라히(57·사진)가 석방돼 귀국하자 AP통신은 “리비아가 완전히 축제 분위기”라며 이같이 전했다.

○ 국제사회 위상 높아지는 리비아

로커비 사건은 1988년 12월 21일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팬암사의 항공기가 공중 폭발해 270명이 숨진 대형 테러사건이다. 리비아 정보기관 요원 메그라히는 2001년 유엔이 주재한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스코틀랜드에 수감돼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리비아는 국제사회에서 전면적인 제재를 받았다. 영국 BBC방송은 “카다피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가장 좋은 시점에 메그라히의 석방이 이뤄졌다”며 “카다피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평가했다.

27세 청년 대위였던 카다피는 1969년 9월 1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강경한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이후 리비아는 1970, 80년대 석유산업 국유화를 비롯한 반(反)서방 정책을 폈고, 여러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1986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카다피를 ‘미친 개(mad dog)’라고 부르며 리비아를 공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태도를 바꿔 국제사회에 적극 협력하면서 리비아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다. 카다피 원수는 올 2월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이 됐고, 6월에는 리비아의 알리 압데살람 트레키 AU담당 장관이 1년 임기의 유엔 총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메그라히 석방 결정에 대해 영국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전립샘암 말기인 메그라히가 고국에서 숨을 거둘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리비아 석유 개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영국 정부의 뜻이 담겨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리비아는 세계 8위인 약 420억 배럴의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다. 2003년 유엔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 뒤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의 업체들이 리비아 유전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 “석방 결정은 실수”…반발하는 미국

로커비 사건으로 189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은 메그라히의 석방에 분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일 “우리는 스코틀랜드 정부의 메그라히 석방 결정이 실수라고 생각하며 석방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해 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리비아 정부에 ‘메그라히가 리비아에서 어떤 형태의 환영도 받아서는 안 되며, 가택연금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테러 희생자 유족들도 강력히 반발했다. 유족 단체를 대변하는 프랭크 더건 변호사는 “그가 리비아에서 영웅으로 간주된다면 유족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 집권 40년 주요 일지

▽1969년 9월 1일=카다피 대위, 쿠데타로 정권장악. 왕정 폐지, 아랍공화국 선포

▽1973∼1974년=석유산업 국유화 및 외국인 재산몰수

▽1986년 4월 5일=베를린 디스코텍 폭탄테러로 미군 3명사망. 미, 리비아 배후 지목 전면 금수

▽1986년 4월 15일=미군, 트리폴리와 벵가지 공습. 카다피의 수양딸 등 41명 사망

▽1988년 12월 21일=팬암 항공기, 로커비 상공에서 폭파. 270명 사망.

메그라히 등 리비아인 2명 용의자로 지목

▽2003년 8월 14일=리비아, 로커비 책임 인정. 희생자 유족에 총 27억달러 배상 약속

▽2006년 5월 15일=미국, 리비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고 외교관계 정상화

▽2009년 8월 20일=메그라히 스코틀랜드에서 석방, 리비아로 송환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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