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난엔 능력보다 인맥” 美, 私的 네트워크시대로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는 댄 풀버 씨는 최근 직장 구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정식 채용공고를 보고 몇 군데 인턴 자리를 신청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결국 컨설팅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며칠 뒤 그는 부즈앨런해밀턴 인사담당자의 전화를 받았고 곧 애틀랜타 사무실의 인턴 자리를 구했다.

풀버 씨처럼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을 동원해 직장을 구하는 MBA 학생이 늘면서 ‘인맥 파워’에 기대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치솟고 전문직 화이트칼라의 구직 기회마저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결과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극심한 구직난 속에 전문적 네트워크의 힘이 약화되는 대신 사적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인맥이나 가족의 영향력보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해온 서구 사회의 인재 발굴 및 인사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UCLA의 경우 가족이나 사적 관계를 통해 직장을 구한 학생 비율은 2006년 전체의 6.7%에서 2007년에는 8%, 지난해엔 8.6%까지 늘었다. 이 수치는 올해 말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스쿨에서는 재학생의 4분의 1이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올해 인턴 자리를 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의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해주려는 고위직 부모들의 요청이 잇따르면서 일부 기업은 공식 절차를 통한 채용시스템이 마비될 정도다. 워싱턴대 MBA는 최근 취업 프로그램 제휴를 맺고 있던 한 기업으로부터 “고객들의 딸과 아들로 인턴 자리가 다 찼으니 인턴 지원서를 내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취업 전문가들도 구직자의 인맥 활용이 고실업 시대에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조언한다. 일부 경제신문도 “방학 때 놀지 말고 인맥 구축 및 확대 작업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내용의 전문가 칼럼을 실었다. 켈리 비즈니스스쿨의 취업담당인 에릭 메디나 씨는 “전례 없는 (구직난) 상황에 처해 있는 만큼 때로는 게임의 룰을 새로 써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혈연과 지연, 학연을 동원한 인맥 활용 전략은 특혜시비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전까지 미국 기업의 60%는 직원 채용 때 족벌주의를 금지하는 내용의 내규를 만들어 운영해 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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